전체 글 (430) 썸네일형 리스트형 금슬 9장 제8장 탈출 대건 13년은 버티기 힘든 해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묻혀 그 해의 연호를 써넣었는지 모른다. 전년도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천하의 곡창이라 불리는 회강(淮江) 지역엔 눈 한 송이, 빗방울 하나 내리지 않았다. 강바닥은 수 길이나 줄어들었고, 어떤 곳은 아예 물줄기가 끊겼다. 강남 지방을 둘러보면 붉게 갈라진 땅이 천 리를 이뤘고, 그 붉은 대지엔 몇 자나 벌어진 금이 가 있었으며, 굶어 죽은 시신이 천 리에 널렸고 열 집 중 아홉은 텅 비었다. 회좌총독(淮左總督)이 조정에 상소를 올린 뒤, 원인을 알 수 없이 집 안의 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다. 반면 상회(湘淮) 지역은 대홍수였다. 홍수가 수십 개의 성을 휩쓸었고, 재해를 입은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열 중 일곱여덟은 길에서 죽.. 금슬 8장 제7장 활진(活阵) 시무단은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강화산인의 작은 정원에 눌러앉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제법 세상 물정에 잘 적응했다. 어차피 강화는 잘 먹이고 잘 재워주었고, 지하 석실 안의 책도 마음껏 볼 수 있었으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강화에게 물어가며 지도도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강화산인의 성격이 무척 좋아서, 그가 아무리 장난치고 버릇없는 질문을 해도 온화하게 대답해주었고, 단 한 번도 꾸짖거나 때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무단은 두 달 넘게 눌러 살았고, 심지어는 조금 심심하고 몸이 근질근질해지기까지 했으니,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두 달이 지나자, 마침내 그는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주원진이 둘러쳐져 있었고, 강화산인은 비록 흥이 나면 삼산육수(三山六水)를 .. 금슬 7장 제6장 고슬(古瑟)속담에 이르길, "반쯤 큰 아이는 아비를 가난하게 만든다." 강화는 이제야 이 말의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시끌벅적한 장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작은 배를 불룩하게 채운 시무단을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배부르냐?” 시무단은 입가에 묻은 기름도 아직 닦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반 그릇의 만두국 국물까지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강화에게 방긋 웃어 보이며, 둥근 얼굴 왼쪽 볼에 보조개 하나와 작은 송곳니 두 개를 드러냈다. 나무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작은 보따리를 짊어지며 말했다. “대접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우리 사부님이 당신에게서 뭘 하나 받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게 뭐든 어서 주시죠. 우리 집 마님이 날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강화.. 금슬 6장 제5장 강화그날 시무단이 구성등의 법술을 펼쳐 구천신뢰를 불러냈고, 창운곡은 골짜기 깊은 곳에서 그들이 숨어 있던 동굴까지 땅이 갈라진 것처럼 거대한 틈이 생겨버렸다. 정작 그 원흉은 짐 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고, 창운곡의 수많은 작은 요괴들은 벌벌 떨며 반쯤 혼이 나간 채 공포에 빠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번개의 틈에서 매일 자시(밤 11시경)가 되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검은 기운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무단은 홀로 산을 내려갔다. 마치 시골 촌놈이 처음으로 도시 구경을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그는 장터 한가운데에 서서, '강화' 선인이나 '하화' 선인을 찾아야 한다는 일은 까맣게 잊고 사람들 사이를 헤매며, 처음 보는 수많은 인파—남.. 금슬 5장 제4장 천기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는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무단이 성반(星盤)을 손에 쥐자, 아이는 금세 얌전해졌다. 어릴 때부터 시무단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뒤집기를 배우자마자 침대에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고, 기어 다니는 법을 익히자 방 안의 물건들이 무사할 날이 없었다. 뛰기 시작하면서는 아예 두 발 달린 작은 재앙이 되었다. 그를 얌전히 만들려면 누군가가 항상 곁에서 감시하며, 장난기 가득한 기미를 바로잡아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조는 우연히 그가 성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단이 아무리 들떠서 뛰어놀고 있더라도, 성반만 하나 손에 쥐어주면 곧 얌전히 앉아 반나절이고 만지작거렸다. 그게 아무 별이나 별선조차 없는 돌판일지라도 상관없었다. 동굴 안에는 빗소리와.. 금슬 4장 제3장 평생 전설에 따르면 구천 위에는 신선이 존재한다고 한다. 신선에 대한 이야기는 민간의 전설이나 이야기책에 산처럼 많다—어떤 선녀가 가난한 청년과 도망갔다거나, 어떤 스님이나 도사가 오지랖 넓게 나서서 연인을 갈라놓았다거나, 몇몇 별들이 서로 모략을 꾸미고 사랑과 권력을 두고 다투었다는 등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진짜 따져보면, 누구도 정말로 신선을 본 적이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전해지기는 하지만, 결국 “예전부터 들은 이야기”, “어느 노인이 말했다”, “이 지역에선 그렇게 전해진다”는 식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다. 은성(殷晟)의 땅에 3만 년 넘는 기록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누가 진짜로 비승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신룡(神龍)처럼 머리만 보이고 꼬리.. 금슬 3장 제2장 백리(白离) 창밖의 백옥란이 졌다. 바람이 불면 큰 꽃송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땅 위를 온통 하얗게 덮었다. 도조는 작은 창가에 서서 반쯤 열린 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뜰 한가운데엔 커다란 성좌판이 깔려 있었는데, 거의 정원의 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다. 마침 아침 햇살이 내려앉는 시간, 성좌판 위의 미세한 빛은 희미해졌고, 눈을 집중해야만 그 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희미한 선들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가끔 꽃잎 하나가 떨어지면, 마치 성좌판에 모든 기운을 빨린 듯 순식간에 시들어버렸다. 그의 막내 제자 시무단은 성좌판 옆에 앉아 있었다. 바짓단을 조금 걷어 발목이 살짝 드러났고, 올해 열 살인 시무단은 키가 부쩍 크기 시작했다. 먹는 건 다 뼈로 가는 듯 말쑥하게 마른 소년 특유의 체형이 .. 금슬 2장 제1장 무단(无端) 누구는 세 살 버릇 평생 간다 하고, 누구는 열여덟 번은 바뀌어야 제 모습이 나온다 한다. 시무단을 보면 애벌레가 어떻게 나비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 수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종종 감탄하곤 했다. 어릴 적 그렇게 제멋대로고 천방지축이던 놈이, 대체 뭘 잘못 먹었길래 나중에는 입만 열면 인의예지 도덕 타령에, 지나치게 점잖고 나무토막 같은 인간 흉내를 내는 사람이 됐는지 말이다. 은성대륙에서는, 백성부터 왕후장상에 이르기까지 예로부터 수련과 도를 닦는 것에 대한 동경이 깊었다. 이 세상에는 수선자(修仙者)와 수도자(修道者)가 있다. 수선자는 아득하고 허무한 존재로, 대개 인간 세상 너머의 공간에 살며, 인간 세계의 세월과 난세, 태평성대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건 세기의 교체..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5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