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강화
그날 시무단이 구성등의 법술을 펼쳐 구천신뢰를 불러냈고, 창운곡은 골짜기 깊은 곳에서 그들이 숨어 있던 동굴까지 땅이 갈라진 것처럼 거대한 틈이 생겨버렸다. 정작 그 원흉은 짐 싸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고, 창운곡의 수많은 작은 요괴들은 벌벌 떨며 반쯤 혼이 나간 채 공포에 빠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 번개의 틈에서 매일 자시(밤 11시경)가 되면 희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검은 기운이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무단은 홀로 산을 내려갔다. 마치 시골 촌놈이 처음으로 도시 구경을 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다. 그는 장터 한가운데에 서서, '강화' 선인이나 '하화' 선인을 찾아야 한다는 일은 까맣게 잊고 사람들 사이를 헤매며, 처음 보는 수많은 인파—남녀노소가 북적이는 모습, 정자와 누각, 푸른 석길들—이 모두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어릴 때 사부님께 들었던 “대천세계”나 “운운중생” 같은 말들이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시무단은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어깨 위엔 취평조(푸른새)를 태우고 있었으며, 두 눈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에는 갓 쪄낸 뜨거운 찐빵을 물고 있었다. 길거리 노점에서 산 것일 뿐이지만, 인세의 맛이라 그런지 매일 스승과 함께 먹던 밍밍한 죽과 채소들보다 훨씬 맛있게 느껴졌다.
세입에 찐빵 하나를 먹어치우고도 만족하지 못한 그는 배를 만지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리자가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곧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겨 ‘강화 선인’을 찾는 일은 급하지 않다 여기고 마음 놓고 즐기기로 했다.
시무단이 찾고 있는 강화 선인은 사실 지금 구록산에 있었다. 아무도 그가 언제, 어떻게 산에 올라왔는지 알지 못했다. 마치 달 밝은 밤, 산들바람을 타고 온 듯한 모습이었다. 구록산의 층층 경계조차 그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도조는 마당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성반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별자리를 점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손을 성반 위에 얹은 채 성실(별빛 가닥) 몇 줄이 장난치듯 손끝에 감기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곁에는 작은 술 화로가 있어 술이 데워지고 있었다.
강화 선인이 그 뒤에 나타났을 때, 도조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곁을 가리키며 말했다.
“왔군, 앉게.”
강화는 격식 따지지 않고 곧장 도조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스로 술잔을 집어 데워진 술을 따르고는 반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원숭이 자식은 어쩌고? 내보냈나?”
도조는 손끝의 성실을 매만지며 고개를 떨구었다. 백년을 닦아온 도조는 여전히 중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불과 며칠 사이에 급격히 수척해졌다. 자세히 보면 귀밑까지 내려온 길고 진한 눈썹 속에 하얀 머리카락이 섞여 있었다.
“무단 그 아이를 몇 년 부탁하겠네.”
강화는 뭔가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비웠다. 둘은 잠시 침묵했고, 강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산 계곡에서 오다가 천공이 하나 보이더군. 방금 생긴 듯한 번갯불 자국 같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도조는 쓴웃음을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강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너의 그 제자 놈은 일곱 살에 사당에 불을 지르더니 이제는 하늘의 벼락을 불러오고…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야. 저 성격이면 나중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 아닌가?”
도조는 쓴웃음만 지으며 말했다.
“이후로는 선우(仙友)께서 부디 잘 가르쳐 주시게.”
강화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십 년 가르쳐서 그 꼴을 만든 것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나? 난 그저 굶기지 않고, 병 안 걸리게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네.”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켜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르친다고 맡긴 아이들이 죄다 더 망가졌지.”
도조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손바닥에는 성실이 빠르게 얽히더니, 성반 위 별들이 강한 빛을 뿜기 시작했고, 별들 사이에 회오리가 이는 듯하였다. 강화는 도조가 바라보는 성반을 보며 멍하니 서있다가 놀란 듯이 외쳤다.
“이건…”
도조는 별빛에 싸여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 눈빛은 깊고도 어두웠다.
강화도 진지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는 성반을 내려다보다가 도조를 향해 망설이며 물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태행산이 무너지는 징조 아닌가?”
도조는 눈을 감고 손을 내렸다. 손에 감겨있던 성실은 모두 말라비틀어지듯 떨어졌고, 성반은 다시 조용해졌다. 별빛은 흐려지고, 수많은 별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졌고, 밤바람처럼 차가운 기운이 구록산의 이 마당을 감쌌다.
“선우여, 우리 생전에 이런 팔황이 무너지는 대혼란을 맞게 될 줄이야…”
강화는 도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문이 막혔다. 도조는 손을 들어 말을 막고, 한참을 침묵하다가 말했다.
“말하지 말게, 이것이 운명이네.”
그는 강화에게 시선을 돌려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선우는 속세를 떠난 분이니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괜찮지만, 우리는 이제 몸이 따라주지 않아…”
강화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그 귀한 제자를 나에게 맡기려는 거로군? 이번엔 진짜 포기한 건가?”
도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아이는 영리하긴 하나 통찰력이 부족해. 작고 빠른 지혜는 있으나, 대지의 무게를 감당할 큰 그릇은 아니야. 만약 안 되면… 선우께서 내 부탁을 생각해서라도 보살펴 주게.”
강화는 잠시 멍해졌고, 도조는 말을 이었다.
“사람마다 인연이 있지. 만약 그 아이가 선천적으로 재앙의 운명을 타고났다면, 누가 끌어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네.”
그 무렵, 시무단은 산을 내려와 거의 보름을 돌아다니다 드디어 생각났다. 강화 선인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는 걸. 그러나 이미 가진 돈을 다 써버린 뒤였다. 뭐든 재미있어 보이고, 처음으로 스스로 물건을 사보는 기회에 돈의 귀중함을 몰랐다. 산처럼 쌓아뒀던 돈은 곧 바닥나고, 여관도 묵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마을 입구의 종실 사당에 몰래 들어갔다. 밤중이라 사람이 없었고, 관리도 없었다. 시무단은 사당 안을 한 바퀴 돌며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기웃거리다가, 탁자 위 먼지를 털어내고 그대로 눕기로 했다.
“쉿, 소리 내지 마. 들키면 잡혀가서 고기 된단 말야.”
그는 취평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미 새 깃털이 나기 시작한 큰 새는 그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쪼그라들어 고기 완자로 변해 그의 발치에 드러누웠다.
한 사람 한 새가 이렇게 와르르 잠이 들었다. 한밤중에 그는 이유 없이 몸을 뒤척였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있었고, 밤에는 가끔 뼈가 아팠으며, 무의식적으로 발버둥 쳤기에 자세가 매우 나빴다. 취병조는 조용히 누워 있었지만, 그가 헛발로 나무 탁자에서 발로 차 버렸다.
큰 새가 놀라서 날개를 퍼덕였고, 다행히도 돌바닥에 얼굴을 부딪혀 납작해지지는 않았다. 새는 분개한 듯이 향로대 위로 날아올라, 시끄럽게 짹짹거리며 시끄럽게 울었다. 그러나 이 망할 꼬마 녀석은 죽은 돼지처럼 자고 있어서 전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취평조는 시선을 그의 머리 위로 옮기고는, 시무단의 어깨 옆을 둥지 삼아 다시 자리를 잡았다. 막 머리를 날개 아래로 묻고 잠을 자려는 순간, 사당의 나무 문에서 바람도 없는데 ‘끼익’ 소리가 나며 스스로 열렸다.
취평조는 깜짝 놀라 목을 쭉 빼고 바라보았고, 그 뒤로 들려온 삐걱거리는 소리에 새로 돋아난 깃털이 몽땅 곤두섰다. 미친 듯이 시우단을 쪼아대고, 그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끝내 시무단을 깨웠다.
시무단은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비비며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때, 취평조가 높이 날아올라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시무단은 눈을 찌푸리며 반쯤 감은 눈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희고 창백한 손가락 몇 개가 문 틈에 걸쳐 있었고, 흰옷을 입은 할머니가 떠다니듯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시무단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향로대로 다가갔다. 시무단이 옮겨 놓았던 향로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시무단은 얼른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는 향로를 소중하게 닦고 향을 피운 다음 절을 올렸다.
시무단은 코를 훌쩍이며 마치 자기가 그 할머니에게 절을 받은 듯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책상에서 뛰어내려 그녀가 절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그제야 할머니가 그를 향해 돌아섰고, 빛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시무단은 온몸이 오싹해지며 얼어붙었다. 그는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웃고 말했다.
“저기… 할머니, 제가 일부러 침입한 건 아니에요. 주머니가 가벼워서… 헤헤.”
그 기묘한 할머니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손짓하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오너라.”
시무단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그녀를 따라갔고, 취평조는 초조해하며 시무단의 옷자락을 물고 필사적으로 뒤로 끌어당겼다. 또 발톱으로 그의 머리를 긁어댔다. 시무단은 머리를 감싸며 어깨를 움츠리고, 취평조를 안아 품속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시끄러, 얌전히 있어.”
안뜰엔 점차 안개가 끼기 시작했고, 취평조는 한기가 입을 벌린 괴물처럼 덮쳐오는 느낌을 받았다. 음산한 기운이 감돌고, 귀신 할머니는 그들을 그 입속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시무단은 몇 걸음 뛰며 따라가다가 물었다.
“할머니, 저를 어디로 데려가시나요?”
그러자 할머니는 그 새까만 입속으로 성큼 들어가며 손짓했다.
“이리 오너라.”
시무단은 그곳에 이르러 멈춰 섰고, 자신보다 조금 더 큰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귀신 할머니, 책에서 봤는데 여긴 귀문관(鬼門關)이에요. 저는 산 사람이라 들어가면 안 된다구요.”
할머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이 변해 사납게 일그러졌고, 시무단은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고 구경하듯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 살아 있는 사람을 속여 귀문관에 데려가려는 건 혹시 탈혼하려는 거예요?”
그러자 할머니는 몇 자나 커진 괴물로 변해 흉측한 얼굴을 하고 시무단에게 달려들었다. 시무단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취평조를 안고 피했고, 계속해서 떠들었다.
“할머니,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저는 동정남에다 도사 지망생이에요. 양기가 너무 강해서 몸을 빼앗아도 얼마 못 살아요!”
귀신 할머니는 아마도 이런 겁 없는 아이는 처음 본 듯, 기이한 얼굴로 그를 멈춰 보았다. 시무단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죠. 제가 종묘사당에서 잔 건 무례했어요. 죄송하고요. 근데 귀신이 된 건 전생에 원한이 남아서 그런 거잖아요? 뭐가 한이 남았는지 말해보세요. 제가 대신 풀어드릴게요.”
“무슨 미련이 남았어요?”
귀신 할머니는 공중에 떠서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입에서 ‘스스’ 소리를 냈다. 그러다 시무단은 겨우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죽여(殺)…?”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누굴요? 아, 맞다. 이미 귀신이 된 지 백 년은 되셨을 테니, 원수들도 다 죽었겠죠? 스스로도 기억 못 할 정도면, 그냥 빨리 환생하는 게 나을 텐데…”
그러자 귀신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고, 시우단은 급히 보따리에서 별반(星盤)을 꺼내며 말했다.
“좋아요, 좋아. 그럼 인과를 한 번 봐드릴게요.”
취평조는 이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이 뒤집히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시무단은 주문을 외우며 별선을 꺼내 들었고, 부드러운 별빛이 별반에서 뿜어져 나왔다. 귀신 할머니는 홀린 듯 앞으로 다가오며 하얀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시무단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귀신 얼굴을 흉내 내며 ‘으악’ 하고 웃었다.
수십 년간 사람을 놀라게 해온 귀신이 그런 장난을 당한 건 처음이었다. 멍하니 있는 사이, 별반에서 강한 빛이 터져나와 그 몸을 꿰뚫었고, 귀신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별빛에 흡수되듯.
한참 후, 마침내 빛이 사라졌다. 시무단은 별반을 두드리며 번개에 한 번 어두워졌던 별반이 드디어 조금이나마 활력을 되찾은 것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수 다 죽었는데 무슨 미련이야. 결국 사람 해치려고 했던 거잖아… 으음, 첫 번째로 본 귀신 치고는 속이기 너무 쉬웠네.”
기절했던 취평조는 이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기절했다. 시무단은 새를 어깨에 메고, 별반을 끼고 향로대로 돌아가 다시 누웠다.
다음 날, 해가 높이 떠서야 시무단은 눈을 떴다. 고개를 들자, 누군가 사당 안에 앉아 있었고, 등지고 앉아 별반을 들고 있었다. 그 별반은 원래 그의 보따리에 있던 것이었다.
시무단은 눈을 비비고 나무 탁자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다.
"강화 선배님!"
강화 산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돌아서서 신선 같은 모습으로 그에게 미소 지었다. 시무단은 소리치며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품에 안겼다.
강화는 아이가 앞으로 자신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고, 그러기를 꺼렸다.
그는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했지만, 시무단은 고개를 들고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요! 동전 한 푼도 안 남았거든요. 못 찾았으면 굶을 뻔했어요!”
강화산인이 든 손이 허공에 뻣뻣해지자 시무단은 그의 배를 만지며 환하게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는 말했다.
"선배님, 당나귀 훠궈 한 그릇 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