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슬(priest)

금슬 7장

제6장 고슬(古瑟)


속담에 이르길, "반쯤 큰 아이는 아비를 가난하게 만든다."
강화는 이제야 이 말의 뜻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시끌벅적한 장터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작은 배를 불룩하게 채운 시무단을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배부르냐?”

시무단은 입가에 묻은 기름도 아직 닦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반 그릇의 만두국 국물까지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강화에게 방긋 웃어 보이며, 둥근 얼굴 왼쪽 볼에 보조개 하나와 작은 송곳니 두 개를 드러냈다. 나무 의자에서 폴짝 내려와 작은 보따리를 짊어지며 말했다.
“대접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 우리 사부님이 당신에게서 뭘 하나 받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게 뭐든 어서 주시죠. 우리 집 마님이 날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강화는 그가 마치 작은 어른처럼 구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툭 튕겼다.
“이놈, 어린 원숭이 같으니, 맨날 여자애 생각만 하기는. 구륵산에서는 공부 좀 했냐? 나 따라와.”

시무단은 대답을 하고는 방방 뛰며 강화를 따라갔다. 두 사람과 한 마리 새는 성 바깥으로 향했고, 강화는 어깨에 메고 있던 고검을 풀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고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배는 커져서 무려 두 장(약 6.6m)이나 되는 길이가 되었다. 강화가 시무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올라타라.”

구륵산에는 고수들이 많은 만큼, 이런 물건을 타는 기법은 흔치 않지만, 시무단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곧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걸 상상하며 재밌어 보인다는 듯이 펄쩍 올라탔다. 강화가 수결을 짚자, 그 고검은 안정되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잠시 후, 땅의 꽃과 풀, 새와 짐승들이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이 올랐다.

하늘 높이 오르자, 바람은 점점 더 매서워졌고, 고검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사람 둘을 태우고 나니 불규칙한 바람에 약간씩 흔들렸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듯했다. 강화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시무단이 고소공포증이 있을까 걱정되어, 그의 가슴 높이쯤 오는 소년을 품에 끌어안았다.

시무단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입을 열자마자 말은 바람에 휩쓸려 버렸다. 그래서 그는 강화의 품에서 머리를 빼내고는 동서남북을 흥미롭게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고검 꼬리에 매달린 수술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는, 손바닥만 한 물건이 이렇게 거대한 것이 되다니,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을까 신기해하며 고검 끝으로 기어가려 했다.
강화는 즉시 그를 제지했다.

이 작은 원숭이 같은 아이는 떨어질까봐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는 자신이 조금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검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도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어느 산 위에 도착했다. 고검의 속도가 느려지자, 시무단은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이곳은 마치 촉 지방이나 소상(潇湘)의 땅인 듯, 사방에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었고, 산등성이마저도 매우 부드러워서,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암석 하나 없이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다.

강화는 그를 산 중턱까지 데리고 와서, 한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멈췄다.

강화산인은 고검을 거두고 앞서 길을 인도했다.
이 대나무 숲은 자연적으로 자란 것 같지는 않았다. 티는 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인공의 흔적이 보였다. 시무단은 층층이 겹친 듯 끝이 보이지 않는 대나무 숲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정색하고 손가락을 꼽아 계산하더니 물었다.
“선배님, 이건 주원진(周元阵) 맞죠?”

강화는 다소 놀란 듯 시무단을 돌아보며 웃었다.
“이런, 너 같은 작은 원숭이도 주원진을 알아?”

시무단은 대답했다.
“알죠, 조금 배웠어요. 사부님 말씀이, 별 계산과 진법은 뗄 수 없는 사이라더라고요.”

강화는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길 안내를 안 해주면, 네가 이 진을 깰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느냐?”

시무단은 진지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다가 대답했다.
“진을 깨는 방법이요…… 있죠.”

강화는 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했다. 이 아이는 대담해서 사람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장난기가 많아 속을 뒤흔들긴 하지만, 이 총명함과 재능은 실로 드문 것이었다.
그런데 시무단이 이내 말했다.
“이 진은 대나무로 이뤄진 거니까요. 순풍 부는 날을 골라서 불을 지르면 깨지는 거 아닌가요.”

강화산인: “……”

취평조는 또 시무단의 머리 위를 휙 날아들며 날개로 세게 한 대 갈겼다.

“이 못된 녀석아, 그럼 내가 돌로 진을 짜면 어쩔래?”

시무단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그러면 진 밖에서 한 소리 외쳐볼게요. 선배님이 설마 저더러 북서풍이나 마시게 하시진 않겠죠?”

강화산인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야 자신이 오랜 세월 겪어온 친구의 고생을 백분의 일쯤은 이해할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대나무 숲을 지나 작은 마당이 있는 곳까지 왔다. 대나무 울타리가 이를 감싸고 있었고, 그 위에는 무슨 품종인지 모를 노란 꽃이 얽혀 피어 있었는데, 꽃잎 위에 이슬이라도 맺힌 듯 아름다웠다. 시무단은 이 마당이 꽤 넓어 보였고, 그 안에 있는 죽루(竹楼, 대나무집) 또한 필요한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서, 속으로 놀라며 생각했다.
‘이런, 산속에 사는 산인 선배도 결국은 집에서 사는 거였구나.’

강화는 죽루 옆에 있는 방 한 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일단 저기서 지내거라.”

그때, 한 청년이 그 방에서 나와 공손하게 강화산인에게 말했다.
“선장(仙长)께서 돌아오셨군요.”

강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무단에게 이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아이는 학동(鹤童)이라 하며, 본디는 신선학이다. 수년간 도행(道行)을 쌓아왔고, 내가 없을 땐 이 아이에게 부탁하면 된다.”

학동은 여전히 공손했으나, 표정은 거의 없었다. 시무단을 향해 말했다.
“도형(道兄), 어서 오십시오. 숙소는 이미 정리해 두었습니다.”

시무단은 그를 한 번 보고, 다시 강화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선배님, 저희 사부님께서는…….”

강화는 그 말을 잘랐다.
“네 사부가 네게 시킨 게 뭔지 아느냐?”

시무단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강화는 웃으며 말했다.
“네 사부가 네게 시킨 건, 다름 아닌 ‘경을 구해오라’는 거다. 네 별 계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어서, 현종은 원래 이 방면에 밝지 않다. 나는 사방을 유랑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써보기도 했고, 편법이긴 해도 좀 아는 것이 있다. 그래서 너를 나에게 맡긴 것이다. 너한텐 기초적인 계산법이나 가르쳐주려 한다. 일단 여기 지내면서 돌아갈 생각은 마라.”

말을 마치고는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며 대나무집으로 들어갔다. 학동은 시무단을 재촉하며 따라오라고 했고, 시무단은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부님이 정말 나보고 강화 선배에게 무공을 배우라고 하신 걸까?’

비록 산에서 내려온 적 없는 어린아이지만, 시무단은 수련과 도를 닦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도조와 강화산인의 친분이 두텁다 해도, 현종의 장문인이자 폐문 제자인 자신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길 리는 없었다.

시무단은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짐 보따리를 방 안에 놓고 또 이것저것 캐묻고 싶었지만, 학동은 생김새는 영물처럼 빼어나지만 세 마디 물으면 한 마디도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가 방 정리를 마치자마자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시무단은 취평선작과 서로 마주 보며 눈짓을 주고받고는, 암묵적인 동의 아래 방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강화는 그에게 분명히 잘 대해주고 있었다. 방 안에 마련된 가구나 물건은 금칠이나 은장식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운치 있었으며 부족한 게 없었다.
침상 옆에는 작은 대나무 발이 드리워져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시무단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계단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취평조를 불렀다.
“멍청한 새야, 이리 와봐, 우리 내려가 보자.”

한 사람과 한 마리 새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갔고, 안쪽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내려가 보니, 과연 별천지처럼 신비한 공간이 나왔다.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샘물이 지나면서, 어쩐지 아래에 커다란 연못을 이룬 것이다. 물은 맑아 바닥이 훤히 보였고, 시무단이 손을 담가보니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그 물을 손으로 떠서 마셔보았고, 그 맛은 달콤하기 그지없어, 창운곡의 모든 요괴들이 애지중지하던 감로천의 물보다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취평조는 돌 위에 올라가 지저귀며 날개를 퍼덕였다. 시무단은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곳엔 돌문이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온통 책으로 가득한 서재 같은 방이 나왔다.

시무단은 작은 탁자 위로 기어올라 책장에서 한 권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았다. 어떤 사람이 쓴 여행기였는데, 세상 기이한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처음 듣는 이야기뿐이었다.
속으로 놀란 시무단은 다른 책도 펼쳐보았다. 이번엔 별 계산의 원리에 관한 책이었는데, 몇 장을 넘기니 ‘삼련사고오혼돈(三联四顾五混沌)’과 같은 보통 수식이 적혀 있었고, 그 계산법보다는 각 과정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식으로 유도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시무단은 탁자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읽기 시작했다. 반 권을 읽었을 뿐인데,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수많은 의문이 갑자기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들도 뽑아보았다. 저자들은 대부분 무명이거나,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지만, 내용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구록산에도 책이 부족하진 않았고, 시무단은 비록 장난꾸러기긴 했지만 도조의 눈길 아래 공부를 게을리 한 적은 없었다. 타고난 기억력 덕분에 많은 것을 외울 수 있었기에, 스스로도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 본 것들은 그의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때, 어디선가 취평조가 무언가를 건드린 듯, 찰랑 하고 현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책을 보며 몰입 중이던 시무단은 깜짝 놀라 탁자에서 뛰어내려 소리가 난 방향을 봤다.
거기엔 거문고 같기도 하고…… 아니, 거문고가 아니라 슬(瑟) 이 놓여 있었다.

그 물건에는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본 시무단은 그것이 평범한 것이 아님을 곧 알 수 있었다. 보통의 아슬은 이십삼현, 송슬도 이십오현 정도이거늘, 이 슬은 현을 세어 보니 무려 오십현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이 손으로 현 하나를 퉁겨보았다.
보통 슬의 소리는 물 흐르듯 평화롭고 감미롭지만, 이 슬에서는 어딘가 말로 표현 못할 애절하고 비감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 소리에 시무단의 마음은 순간 멈칫했고, 그 잔향은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맴돌다가, 마치 연못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듯,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 순간 그는 가슴이 텅 빈 듯한, 무엇인가 잃은 듯한 공허함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정신이 나간 사이, 손끝이 현에 스쳐 아주 가느다란 상처 하나가 났고, 그에서 떨어진 핏방울 하나가 오십현 슬 위에 떨어졌다. 그러자 그 피는 마치 슬이 빨아들이기라도 한 듯 사라져버렸다.

시무단은 깜짝 놀랐고,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보아하니, 너와 이 슬 사이에도 인연이 조금은 있나 보구나.”

시무단이 돌아보니, 강화산인이 어느새 문가에 서 있었다.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이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

“선배님.”

강화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와 슬을 들어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이것은 고물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십현 고슬이 연주하는 곡에는 큰 슬픔이 담긴 음이 있어 사람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만든다더구나. 그래서 후세에는 줄을 절반으로 줄여 이십오현으로 만든 것이지. 지금은 이런 고슬은 이미 전해지지 않으니, 보기조차 힘든 물건이다.
나도 온갖 수고 끝에 이 한 자루를 손에 넣은 것이야.”

그의 손이 슬 위를 스치자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강화는 시무단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드리워진 것을 보고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시무단이 마치 온종일 놀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든 것 같았다. 슬픔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이미 약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낸 듯했다. 앞으로는…
도조가 했던 말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는 말을 떠올리자 그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금슬(prie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슬 9장  (0) 2025.07.19
금슬 8장  (0) 2025.07.19
금슬 6장  (2) 2025.07.18
금슬 5장  (0) 2025.07.18
금슬 4장  (0)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