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탈출
대건 13년은 버티기 힘든 해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묻혀 그 해의 연호를 써넣었는지 모른다.
전년도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천하의 곡창이라 불리는 회강(淮江) 지역엔 눈 한 송이, 빗방울 하나 내리지 않았다. 강바닥은 수 길이나 줄어들었고, 어떤 곳은 아예 물줄기가 끊겼다. 강남 지방을 둘러보면 붉게 갈라진 땅이 천 리를 이뤘고, 그 붉은 대지엔 몇 자나 벌어진 금이 가 있었으며, 굶어 죽은 시신이 천 리에 널렸고 열 집 중 아홉은 텅 비었다. 회좌총독(淮左總督)이 조정에 상소를 올린 뒤, 원인을 알 수 없이 집 안의 들보에 목을 매어 죽었다.
반면 상회(湘淮) 지역은 대홍수였다. 홍수가 수십 개의 성을 휩쓸었고, 재해를 입은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열 중 일곱여덟은 길에서 죽었다. 일곱여덟 살 난 여자아이 머리에 풀 한 줄기 꽂으면 좁쌀 한 되 값에 팔려 나갔고, 건강한 사내아이도 좁쌀 세 되면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전란의 백성은 태평한 시대의 개만도 못했다.
황도 평양성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빛은 달이 지나도록 열리지 않았다. 마치 사람들 머리 위 세 자 위에 솥뚜껑 하나를 덮어놓은 듯, 눌려 숨도 쉬기 힘들었다. 노인들은 말했다. “한밤중에 나가 고개를 들어보면 그건 구름이 아니라, 사방에서 떠도는 원혼들이 황제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러 온 것이다.”
천재가 인재를 잇고, 상북(湘北) 지역에선 마부 하나와 농민 하나가 깃발을 들어 올렸다. 평란을 위해 조정에서 파견한 군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더는 살 수 없다고 여긴 이들이 사방에서 응했고, 오랜 세월 태평을 누리던 대륙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끝없는 전쟁의 시대였다.
물론, 이 모든 건 촉 땅 외진 산봉우리에 갇혀 있는 시무단과는 아무 관련도 없었다.
그가 보낸 전갈 새인 취평조는 한번 가더니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래도 그는 별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역시 저 멍청한 새는 뱃속도 텅텅, 머리도 텅텅, 몸뚱이는 전부 기름뿐이군. 나는 것도 강호 산인보다 느려.’
강화는 처음엔 이 아이를 강제로 산에 가둬둔 것을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시무단은 천성적으로…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았다.
전설에 따르면, 갓 기어 앉을 줄 알게 되었을 무렵, 누군가 그의 손에서 장난감을 뺏어가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목놓아 울었을 텐데, 그는 그저 까만 눈을 깜박이며 한번 “아!” 하고 말할 뿐, 되찾으면 계속 가지고 놀고, 못 찾으면 금세 다른 장난감으로 관심을 돌렸다.
도조의 막내 제자인 반애 진인이 실험 삼아 그 주변의 모든 장난감을 다 뺏어가자, 시무단은 한참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자기 발을 껴안고 오물오물 깨물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못 뺏겠지?’
강화의 관찰에 따르면, 시무단이란 사람은 — 조급하지 않고, 화내지 않으며, 두려움도 없었다.
세상에는 영화나 욕됨에 흔들리지 않고,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빛 하나 변치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사를 겪고 희로애락에 익숙해진 이들이다.
시무단은 달랐다. 그는 타고난 그런 사람이었다. 뇌가 하나 빠진 것도 같고, 자가위안 능력도 탁월했다.
열여 년을 살던 구록산을 떠났다고? 괜찮다. 밖에 한번 나와보는 것도 좋지. 산에 갇혀 나가지 못한다고? 괜찮다. 먹고 마실 건 있으니까. 전갈을 보낸 새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괜찮다. 새가 멍청한 탓이지. 그래도 사부가 키운 새니까 용서해주자.
어쨌든 그는 스스로 놀이를 잘 찾아냈고, 배운 것도 곧잘 응용했다.
날이 더워지자, 시무단의 오두막은 매우 시원했다. 어째서일까?
학동이 안을 들여다보고는 코가 휘어질 뻔했다. 시무단은 천장 대들보에 줄을 매달고, 그 아래 둥근 바구니를 달았다. 바구니 앞엔 큰 부채를 묶어 두었고, 강화가 기르던 토끼 요괴 몇 마리가 그 바구니 안을 죽어라 돌고 있었다. 바구니가 돌면 부채가 흔들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시무단은 시원했지만, 토끼들은 혀를 내밀 정도였다.
큰 토끼가 강화 앞에서 울며 호소했고, 학동 뒤에 서 있던 강화가 자세히 보니, 바구니 속은 단순한 바구니가 아니었다. 삼출육격(三出六格)의 소주원진(小周元陣)이 짜여 있었던 것이다.
몇 마리 멍청한 토끼들은 그 속에 갇혀 방향도 모르고 달리기만 하다가 못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강화는 이제 단념했다. 잠깐만 눈을 떼도 시무단은 별별 희한한 짓을 만들어냈다.
그가 이러는 게 자기를 자극해서 풀어달라고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즐기기만 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육회활진(六回活阵)’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진법이다. 진주가 통과시키지 않는 이상, 누구도 순식간에 변하는 구천의 모든 성좌 궤도를 계산할 수 없다. 성좌가 바뀔 때마다, 숲 전체의 진형도 함께 바뀌어야 하며, 이 계산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일생에 겨우 수십 살이고, 바둑판 위에서 2×2씩 곱해진 쌀알도 다 못 센다는데, 이런 걸 다 셀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강화는 그저 시무단이 천성이 좋아서, 이 비밀진으로 그를 자극해보려 했을 뿐, 정말로 이 진을 풀 수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가 좀 더 들고 성격이 안정되면 그때 데리고 나가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산중에는 해와 달이 없고, 세상에는 천 년이 흘렀다.
그때 나가면 구록산의 모든 것이 옛모습 그대로이긴 어려울 터였다.
반년쯤 지나, 취평조가 마침내 돌아왔다. 이제 다시 윤기 흐르는 깃털을 뒤덮었고, 불에 구워질 듯한 대머리 닭 모습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보낸 건 그새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구록산이 너무 멀어서였다. 이름은 ‘선작’(仙雀)이지만, 신통력이란 게 하나도 없었다.
갈 때는 불꽃에게 쫓겨 겨우 도착했고, 화련동에 도착했을 땐 피를 토할 뻔했다. 백리 앞도 안 보이는 정신으로 겨우 며칠을 엎드려 있다가 살아남았다. 돌아오는 길은 더 느렸다.
아마 시무단의 체면 때문인지, 백리(白离)는 이 난폭하게 돌진한 거대 새에게 나름 정중하게 대했다.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잘 먹이고 잘 재운 뒤에야 답장을 주고 돌려보냈다.
그날 이후로, 백자의는 더는 백리 앞에 단둘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모자 사이는 원래도 소원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냉전은 처음이었다.
화련동에 들어온 모든 작은 요괴들은 숨조차 죽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였다.
백리의 태도는 더욱 알 수 없게 변했고, 백자의를 따라 깊숙이 숨어 지내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때때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창운곡 안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전설 속의 그 친어머니조차도 때때로 두려운 얼굴로 몰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그는 참고, 모른 척했다.
“나는 대간대악의 무리인가?” 백리는 이 일로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록 자비로운 성품은 없지만, 줄곧 오직 도만을 닦아왔고, 태어나 지금까지, 삼재양재를 지나며 한 번도 악업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보통의 작은 요괴들이나 작은 짐승들조차도, 모두 자기 굴이 있고, 부모 형제 족속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데, 오직 그만. 기억이 시작된 이래, 백자이라는 이름뿐인 어미는 한 번도 그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때 그가 아직 형체를 이루지 못했을 때, 겉보기에는 사람 모양에, 머리 위에 여우 귀가 붙어 있었는데도.
그녀는 심지어 가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마다했고, 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조차도, 언제나 억지로 자신을 꾸며 한 얼굴 웃는 낯으로 조심스럽게 타이르기만 했다.
그의 악의는 감히 지적할 자 없고, 그의 호의는… 아무도 탐내지 않았다.
백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치 이질적인 존재처럼 살아온 것 같다고 느꼈고, 모든 이가 그를 경계했다——시무단을 제외하고는.
천호족은 오백 년에 한 번 소천겁, 천 년에 한 번 대천겁이 있다. 소천겁은 이미 한 번 겪었지만, 백리는 자신의 대천겁이 그렇게나 위험할 줄은 몰랐다——이른바 그는 아직 산을 벗어난 적도 없는 어린 여우일 뿐이며, 인과 선악을 오염시킨 적도 없고, 천도는 지극히 공평하니, 내리는 재앙은 시험일 뿐일 텐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에게 떨어지는 천뢰는 한 번 한 번이 진심으로 그의 삼혼칠백을 깨뜨리려는 것이었다.
백리의 마음속에 갑자기 절망이 일었다, 남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면, 스스로에게 “사정이 따로 있다”라며 위로할 수 있지만, 이번엔 하늘조차도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인가?
그는 스스로 자문했다, 하늘을 해치고 이치를 어긴 일이 없는데, 설마 인과 윤회란 게 다 거짓말이란 말인가? 백리가 이미 세상에 태어났는데, 그들이 무슨 권리로 이유도 없이 그를 죽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자, 천겁에 의해 수련의 대부분을 잃고, 마음속에 마기가 치솟아 올랐고, 눈앞에 천 년 수련이 다 타버리려던 찰나,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이 하늘이 왜 멀쩡하다가 벼락을 치는 거야, 대우야, 어서 숨을 곳을 찾아보자, 곧 비가 오려나 보다.”
사람이다!
천겁은 사람을 피하지만, 보통 요괴가 천겁을 받을 때는 사람에게 의지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인과가 너무 커져, 훗날 그 은혜를 갚지 않으면, 다시는 진보할 수 없다.
하지만 백리는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사람 쪽으로 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인과고 뭐고가 아니라, 삼혼칠백이 천뢰에 의해 깨지면, 그는 윤회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때 풍잔을 남긴 금풍옥로에서 간신히 살아나온, 청추를 데리고 몰래 창운곡으로 놀러 온 시무단이 처음으로 백리를 만났다. 백리는 내공이 상했고, 여우 귀까지 드러나 있었으며, 모습은 자연히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간 듯했으니, 마치 원형으로 되돌아간 듯, 머리는 헝클어지고 몰골은 초췌했으며, 시무단은 그를 보고 놀라 멍하니 있다가 첫마디로 말했다.
“어이쿠, 이게 어디서 굴러온 작은 미인이야?”
그런 다음 그는 백리 머리카락 속에 숨겨진 여우 귀를 보고, 고개를 들어 밖의 번개치는 하늘을 보고는, 이미 초조해져 적의를 드러내는 청추를 툭 치며 말했다.
“그만 좀 해, 넌 도를 닦아 사람 되더라도 덩치나 큰 놈이 될 텐데, 이 사람은 여우족이야, 네가 부러워해봤자 소용없지——그쪽 작은 아가씨, 겁먹지 마, 이리 와, 우리 집 대우는 가죽도 두껍고 살도 두꺼워서, 너를 잠깐 막아줄 수 있어.”
백리는 평생 잊지 못했다, 그 병약한 시무단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말했던 것을.
“자, 얼른 머리에 묻은 물 닦아.”
그렇게 아무런 그늘도 없고, 해맑게 웃는 얼굴.
백리는 그때 멍하니 한참을 서 있다가서야 그것을 받아들고, 어색하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보답할 거야.”
“좋아, 그럼 나한테 시집오면 되겠네.”
그로부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 걸어주는 사람을 갖게 되었다.
시무단은 그때 잘난 체하며 다리를 쭉 뻗은 취평조를 바라보며 백리가 그에게 보낸 물건을 떼어냈다. 안에는 간단한 답장 한 통과 손바닥 길이도 안 되는 현철봉 하나가 들어 있었다. 보기엔 새카맣고, 마치 집 짓다 남은 고철덩어리 같았다.
시무단은 기쁜 얼굴로 그 조그만 검은 막대기를 품에 넣고는, 취평조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린 이제 집에 간다.”
그날 밤, 그는 취평조를 데리고 다시 육회진 앞에 섰고, 이번에는 새가 얌전해져 그의 품에 파고들며 죽어도 천기를 현혹하는 진을 보려 하지 않았다.
시무단은 성반을 꺼내, 그 평범해 보이는 검은 막대기를 성반 위에 갖다 대고, 꽤나 꼬인 주문을 한 마디 읊조리자, 성반과 현철봉이 닿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였고, 곧 성반이 몇 배로 커지더니 마치 커다란 우산처럼 시무단 전신을 덮으며 공중으로 떠올라 거꾸로 드리워졌다. 성실(星絲)은 덩굴처럼 시무단의 손가락과 현철봉을 휘감았다.
시무단은 강화의 마당을 돌아보며 “헤헤” 웃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또 뵙겠습니다!”
“탐랑이 육궁에 들고, 삼식이 지나면, 신좌로 향한다.”(원문:“贪狼入六宫,进三息,走神座位。”)
그 높이 떠오른 성반은 점점 더 올라, 모든 대나무와 거석들 위로 솟구쳐 올랐고, 별빛은 그 말소리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하늘의 별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