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무단(无端)
누구는 세 살 버릇 평생 간다 하고, 누구는 열여덟 번은 바뀌어야 제 모습이 나온다 한다.
시무단을 보면 애벌레가 어떻게 나비가 되는지 알 수 있었다 — 수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종종 감탄하곤 했다. 어릴 적 그렇게 제멋대로고 천방지축이던 놈이, 대체 뭘 잘못 먹었길래 나중에는 입만 열면 인의예지 도덕 타령에, 지나치게 점잖고 나무토막 같은 인간 흉내를 내는 사람이 됐는지 말이다.
은성대륙에서는, 백성부터 왕후장상에 이르기까지 예로부터 수련과 도를 닦는 것에 대한 동경이 깊었다.
이 세상에는 수선자(修仙者)와 수도자(修道者)가 있다.
수선자는 아득하고 허무한 존재로, 대개 인간 세상 너머의 공간에 살며, 인간 세계의 세월과 난세, 태평성대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건 세기의 교체와 왕조의 흥망성쇠요, 사는 건 바람과 이슬을 먹는 세속과 무관한 삶이다. 구록산 현종의 종문이자 도조(道祖)와 친분이 깊은 강화산인이 바로 보기 드문 수선자였다.
수도는 다양한 문파로 갈라진다. 그중 가장 크고 유명한 수도 문파로는 ‘구록산 현종’, ‘보리산 대승교종’, ‘서극곡 밀종’, 그리고 ‘낙유애 낙유교종’이 있다.
다만, 교의가 느슨해 제자들도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고, 자주 향락을 좇아 경악스러운 짓을 벌이는 낙유교종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대문파는 범인의 마음속에선 지극히 숭고한 존재였다.
현종은 언제나 세상에 몸담으며, 제자들에게 천하의 백성을 내 일처럼 여기도록 가르친다.
대승교종은 큰 선을 추구하며, 신령을 믿고, 제자들은 육식을 금하며 평생 삼베옷만을 입고 온화하고 바르며 선행에 힘쓴다.
밀종은 현학에 빠져 오직 ‘자연’이라는 두 글자만을 추구하고, 제자들 역시 대부분 신비롭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수도자들은 천년을 살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며 요괴를 베고 마귀를 없앤다고 한다. 조정의 문무관들, 나라의 기둥 같은 인물들 가운데에도 이 세 문파 출신이 많았다.
황제조차 이 세 종문의 종주에게는 공경을 아끼지 않고, 황족과 귀족 자제들까지 이 문파에 들어가고자 줄을 설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뼈와 근기, 자질이 탁월해야만 제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런데 시무단은 이름처럼 참으로 ‘무단히’ 대박을 터뜨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현종 도조 종주에게 주워졌고, 그 갓난아기의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막내 제자로 삼아버렸다.
남들 평생 갈고닦아도 얻기 힘든 인연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클수록 삐뚤게 자라, 하늘이 내린 인연도 아깝기 짝이 없었다.
어릴 적 구록산에서 시무단이 저지른 ‘위대한 업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해, 강화산인이 구록산을 찾아 도조와 술 마시며 도를 논하다가, 취해 물정자에 쓰러져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얼굴이 서늘하고 머리에 바람이 부는 듯하여 손을 뻗어 만졌더니, 수백 년을 기른 도인의 수염이 어느새 말끔히 밀려 있었다.
강화산인은 펄펄 뛰었지만, 그 수염을 몰래 밀어다 닭장 지붕에 얹어 새알을 키우는 데 쓴 시무단은, 결국 도조의 노여움을 사 물정자에 거꾸로 매달려 제자들의 구경거리가 되었고, 이 일로 일약 ‘구록산 악동’으로 명성을 떨쳤다.
시무단은 아마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간덩이가 부은 놈이었는지, 갓난아기였을 때 늑대굴에서 도조에게 주워졌건만, 늑대나 낯선 사람 무리를 봐도 울지도 않고 그저 커다란 눈으로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빴다.
걸음마 배울 땐 통통한 다리로 비틀거리며 겨우 걷는 와중에도 마구 달려가다가 넘어져 턱이 까져도, 울지도 않고 누구의 손도 필요 없이 혼자 벌떡 일어나 씩 웃으며 잇몸을 드러냈다.
조금 더 자라자 매일 지붕 위에 올라 기와를 뜯는 게 일상이 되었다.
500년을 산 도조는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에 봄바람 같은 대현자라 불리던 인물이었지만, 이 막내 제자를 들이고 나선 수련이 죄다 무너졌다. 매달 분노 폭발로 자를 서너 자는 부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 많이 맞다 보니 그런 건지, 시무단은 맞아도 끄떡없는 몸이 되었고, 도조가 “이 망할 놈, 이리 와서 맞아라!” 하고 소리치면 순순히 달려와 얻어맞고는 엉덩이 문지르며 콧물 쓱 닦고 또 산 전체를 뒤집어 놨다.
남자아이가 어릴 때 말썽 좀 피우는 건 흔한 일이지만, 시무단은 정도가 지나쳤다.
강화산인 수염 깎은 건 새발의 피고, 다섯 살 때는 구록산 신수 ‘청추’를 양 몰듯 몰고 나가 산 아래까지 내려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청추를 구경하고 난리 나는 바람에 형들이 달려가 겨우 데려왔다.
여섯 살 땐 아이들과 숨바꼭질하다 아무도 모르게 뒤산의 요괴들이 우글대는 창운곡으로 들어가 요괴들과 어울려 놀았고, 도조가 직접 나서 수색했을 땐 이 바보같은 놈이 커다란 붉은 뱀 둥지에 들어가서 뱀들과 함께 자고 있었다.
일곱 살 겨울, 연말 조상제 때 도조의 사형제들이 ‘구천현화’를 불러와 의식을 치르던 중, 이놈이 한밤중에 들어와 이 불이 일반 촛불과 어떻게 다른지 시험해보겠다며 몰래 가져 나가 또래들과 폭죽놀이 하다가 불을 질러, 현종 사당 반쪽을 태워버렸다.
여덟 살 땐 도조의 동문 사매인 고약 대사의 유풍원에 몰래 들어가, 거기 심어진 ‘유풍잔’ 여든한 그루를 싹 망쳐놨다.
유풍잔은 삼십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다시 삼십 년 휴면하는 귀한 식물로, 바람이 불면 그 향기를 맡고 전생을 꿈꾸며, 꽃술의 이슬을 한 방울 마시면 아무리 술을 잘 마셔도 정신을 잃는다고 전해진다.
시무단은 그 귀한 꽃들을 깎아내고 꽃술의 이슬을 모아 한 병을 가득 채운 뒤,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목말라 그걸 통째로 들이켜버렸다.
결국 반년 넘게 의식을 잃었고,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겨우 깨어난 뒤 도조에게 끌려가 사죄하러 갔는데, 처음엔 싸늘한 얼굴이던 고약 대사도 반년도 안 된 새 앙상해진 시무단을 보더니, 말라서 얼굴은 뾰족하고 턱은 사람 찌를 듯해 안쓰러웠는지, 한숨 쉬고 그냥 넘어갔다.
도조는 이쯤 되면 생사의 경계에서 살아온 만큼 마음이 가라앉고 자각도 생겨 좀 얌전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또 헛된 바람이었다.
한동안 얌전하다 싶었는데 두 달쯤 지나자 창운곡의 요괴 대장 천호요왕 백자의가 찾아와, 시무단이 자기 아들을 꼬셔 데려갔다고 성내며 찾아왔다.
물정자로 가보니, 시무단이 한 흰옷 차림의 소녀와 의젓하게 결혼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 소녀는 겉보기엔 일곱, 여덟 살이지만, 흰 옷에 은색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고, 병든 듯 창백했지만 눈매 하나로 매혹이 넘쳤다. 분명 수백 년은 된 요괴, 인간 형태로 수련한 여우 요괴였다.
도조는 머리가 다 새어갈 지경이었다.
자기가 무슨 인과를 지었길래 이런 마귀 같은 제자를 떠안았는지 모르겠다며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시무단은 그 여우를 끌고 와선 “사부님! 사부님! 제 아내예요! 삼사형이 그러더라고요! 아내를 얻으면 아들이 생기고, 아들이 생기면 저 대신 맞을 수 있대요! 하하하…… 아악! 사부님 때리지 마세요, 사부님……!”
요망한 여우도 데려왔으면 됐지,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구분 못 해?!
창운곡의 요괴들은 천호가 단속하는 덕에 인간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수련하며 살아왔고, 구록산과는 적당한 거리로 별다른 충돌 없이 지냈다.
백자의는 시무단이 그저 철없는 아이일 뿐이고, 도조에게 혼쭐 난 걸 보고는 더 따지지 않고 자기 아이를 데리고 돌아갔다.
이 일로, 시무단은 ‘행실 불량’이라는 이유로 아들이 대신 맞는 꿈에서 깨기도 전에 다리가 부러져 절뚝거리며 사당에 반년간 꿇어앉아 지내야 했다.
그해, 그는 아홉 살이었다.
도조는 이 막내 제자를 깊이 아끼고 엄하게 다뤘다.
현종 전체를 통틀어도 시무단만큼 뼈대와 재능이 뛰어난 아이는 없었다.
영리할 땐 정말 영리해서 뭘 가르쳐도 한 번에 깨우쳤고, 특히 천문 계산에 있어서 타고난 감각을 지녔다.
어릴 적부터 거대한 성좌판 앞에서 턱을 괴고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해하지 않았고, 별자리의 운행을 퍼즐처럼 하나하나 정확히 계산하며 푹 빠져 있었다.
다만, 그것 말고는 죄다 재앙이었다.
못할 짓이 없었고, 안 저지를 사고가 없었다.
구록산의 사람들 사이에선, 시무단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옥돌 같고, 가까이서 보면 단단한 돌덩이, 그런데 그 돌은 화장실에서 썩는 냄새 나는 돌이었다.
금슬(pri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