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살의(殺意)
네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사람이 너를 죽이러 올 것이다.
이 세상의 이치는 언제나 그렇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손을 뻗어 빼앗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그걸 네 손에 쥐여주겠는가?
경영(经营), 경영은 또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해도, 사람의 셈은 하늘의 셈보다 못한 법이다. 수많은 꾀를 내도 결국 하늘이 망쳐놓으면 그게 다 허사 아닌가? 웃기는 일이지.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에 걸맞은 힘이 있어야 한다. 운명을 얕잡아볼 수 없다면, 운명이 너를 얕잡아볼 것이다——이 이치는 이제 네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너는 나보다 약하니, 네 피와 살은 당연히 내 것이 되는 거다.
그 마른, 썩은 시체 냄새가 나는 손이 어둠 속에서 아무 방해도 없이 그를 향해 뻗어왔지만, 그는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숨이 목에 걸려 버렸고, 온몸은 공포에 휩싸였다.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 도망칠 수 없는 두려움, 속수무책으로 도살당할 듯한 억울함과 분노가 그를 가득 채웠다. 백리는 갑자기 깨어났고,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끝에서 손톱이 세 치 넘게 자라나 날카롭게 시트를 갈기갈기 찢고, 손바닥엔 피가 흘렀다.
그런데 그 피는 검은색이었다. 먹물처럼 한 방울 한 방울, 생각해보면 그의 몸속은 속까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하얗고 고운 피부를 지니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피 냄새에 이끌려, 그의 그림자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나 침대 기둥을 타고 기어올랐다. 그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치 고기 만두 냄새에 끌린 개처럼, 피 흘리는 그의 손 주위에 모여들어 탐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새도 먹이를 좇다 죽는 법인데, 이런 귀신 같은 것들도 먹이를 좇다 죽는 수밖에 없구나.
결국,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더는 참지 못하고, 허공 속에 또 하나의 공간이 찢기듯 열리며, 시커먼 발톱 하나가 그 틈에서 튀어나왔다. 백리의 손목을 낚아채듯 덮쳐들었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던 백리는 이 순간 갑자기 눈을 들었다. 그의 눈은 허망했고, 그 안에 새까만 어둠이 비치며,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 그는 손을 들어 그 그림자를 꽉 붙잡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그림자의 몸속을 파고들었고,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는 짧고 쉰 비명을 내지르며 검은 연기로 변해 그의 입속으로 흘러들었다.
백리는 배탈 날까봐도 걱정하지 않는 듯, 그냥 야식 먹듯 그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방금까지 들끓던 그림자도 점차 조용해지며, 얌전하게 닭 죽는 걸 본 원숭이처럼 위축되었다.
백리는 자신의 손을 들어 손톱과 상처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손톱은 천천히 원래대로 들어갔고, 그는 고개를 숙여 핥듯이 피를 닦았다. 혀끝에 바늘과 실이 달린 것처럼, 핥는 곳마다 상처가 천천히 아물었고, 매끈한 피부만 남아 방금까지 먹물 같은 피를 흘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을 휘둘러 등불을 켰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좋아, 나 아직도 무서워.
벌써 오래전에 그곳을 벗어났고, 자기를 잡아먹으려던 자도 자기가 잡아먹었는데, 백리는 자신이 이미 무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무서웠다. 실력이 더 강해질수록 기뻐할 틈도 없이, 곧장 “더 강한 자가 나를 해치러 오겠지” 하는 쓸데없는 공포가 덮쳐왔다.
천운과 기회를 빌려 만마종을 찢고 도망쳐 나왔고, 세상에 못 갈 곳은 없었지만, 진짜 잠에 들기만 하면, 꿈에서는 끝없는 어둠이 나타났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분노도 커졌고, 분노가 커질수록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백리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그림자를 차갑게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헛된 기대는 하지 마. 너희들은 나올 수 없어. 나를 이길 수 없어.”
그러나 그는 곧 슬퍼졌다. 가슴속이 싸늘한 살기로 가득 차, 온몸이 전혀 따뜻해지지 않았다.
이것만큼은 그는 통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남자가 그의 혈맥에 남긴 것이고, 백리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백리는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나, 그대로 시무단의 방으로 갔다. 시무단은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 자고 있었다. 백리는 몸을 숙여 그의 휘장을 걷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지켜보다, 낮 동안 정말 그를 죽이고 싶었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지옥의 18층에서 기어 올라오며, 마음속에 가득했던 건 옛날 창운곡(蒼雲谷)에서 신선처럼 걱정 없이 지냈던 시절이었다.
그 희망은 한 줄기 빛처럼 그를 이끌었지만, 막상 빠져나오고 나니 모든 것이 변해 있었고, 창운곡도 돌아갈 수 없었다. 사람도 변했다.
이제 너도 내 적이 되겠지. 너도 내 길을 막는구나.
백리는 시무단의 이마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걷어내고, 그의 무방비한 잘생긴 얼굴을 보며, 마음속 깊이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그를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질질 끌려서 괴로운 것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손톱이 다시 자라났다. 끝이 시무단의 머리카락에 닿았는데, 그 예리함은 털끝도 자를 정도였다.
살인무기 같은 손톱 끝이 시무단의 이마에 닿았을 때, 백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 속엔 먹구름이 뒤섞였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그는 한숨을 쉬며 손톱을 집어넣었다. 시무단의 침대 옆에 앉아, 백리는 마음속으로 혼잣말했다.
하지만 그마저 없다면, 난 도대체 뭘 위해 살아야 하지?
그는 고개를 숙였고, 문득 낮에 본 시무단의 허리띠가 떠올랐다. 몸을 숙여 그의 옷가지를 살펴보니, 과연 넓은 허리띠 밑에 오래된 머리장식이 숨어 있었다.
백리는 그것을 꺼내 손에 쥐고 잠시 생각하더니, 가슴 안쪽에 넣어 잘 간직했다.
너도 아직 나를 마음에 두고 있지?
그는 시무단을 툭 쳐 깨우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으로 좀 가봐. 나도 같이 잘래.”
시무단은 눈을 반쯤 뜬 채 찌푸린 얼굴로 그를 보며,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악몽 꿨어.” 백리는 태연하게 말했다.
시무단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 모양새만 그럴 뿐 머릿속은 온통 흐릿했을 것이다. 한참 후에야 웅얼거리며 등을 돌려 눕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리는 그의 곁에 누웠다가, 다시 그를 툭 쳐 깨우며 말했다.
“일어나봐, 할 말 있어.”
시무단은 죽은 생선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백리는 끈질기게 흔들어 결국 그를 깨웠고, 시무단은 벌떡 일어나 베개를 백리 얼굴에 눌러대며 화내듯 소리쳤다.
“도대체 끝이 있긴 하냐! 입 다물어, 또 시끄럽게 하면 진짜 눌러 죽인다!”
날 죽이려 들다니, 이 망할 놈. 낮에 시장에서도 수상하더니 밤에 또 이 짓을 해?
시무단은 분하고 억울한 감정에 치솟았고, 베개를 백리 얼굴에 힘껏 던졌다.
예전에 네가 기분 나쁠 땐 누가 웃기려고 별짓 다 했는데. 놀아주는 사람 없을 땐 누가 산에 올라가 과일 따줬는데. 창운곡이 무너졌을 때 누가 위험 무릅쓰고 널 구하러 갔는데. 널 죽은 줄 알고 몇 년이나 마음 졸였는데——이 망할 놈이 날 죽이려 해?
백리는 그가 갑자기 폭발한 데 당황해, 그간 시무단이 이렇게 기상 악몽이 심한 줄도 몰랐다. 겨우겨우 베개를 뚫고 얼굴을 내밀었을 땐 고분고분한 머리카락이 마치 새 둥지처럼 유린당했다. 그는 여전히 약간 이해할 수 없었다.
시무단은 베개를 한쪽으로 던지고, 다시 이불을 끌어당기며 화난 채 등을 돌렸다.
다시는 이 백안시(白眼狼)를 상대하나 봐라. 내가 미친놈이지.
하지만 백리는 살짝 웃은 듯, 반쯤 일어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고는 가슴 안에서 작은 청동 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두 치도(가로세로 5cm) 안 되는 네모난 것처럼 보였고 한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수공은 꽤 조잡했지만, 그의 손에 닿자 희미한 빛이 났다.
백리는 몸을 숙여 그 청동 조각을 시무단 목에 걸어주며 말했다.
“벗기지 마. 이건 청동이 아니야. ‘청규(青硅)’라고 하는 건데…… 저쪽 세계의 물건이야. 영성을 갖고 있어.
이 청규는 내 피에 백 일 이상 담궈뒀어. 날 대신해 널 보호할 수 있어.
혹시라도 나중에 내가 날 억제하지 못해서 널 다치게 해도, 이 청규가 한 번 막아줄 수 있어.”
시무단은 찡그린 채 손에 빛을 모아 조명을 만들고는 간신히 그 청규 조각을 살펴봤다. 청년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빨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물었다.
“이거, 네가 새긴 거야?”
“내가 새긴 너야.” 백리는 말했다. 그 여섯 글자 안에 온갖 말들이 담긴 듯, 말투엔 형용할 수 없는 정이 서려 있었다.
시무단은 잠시 침묵하다, 팔꿈치를 들어 백리의 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백리는 신음하며 방심하고 있다가 그에게 얻어맞고 매우 아팠다. 시무단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헛소리 마! 이 쭈글쭈글한 감 같은 얼굴은 너잖아!”
그는 청규를 손으로 움켜잡았지만, 결국 빼내지 않고 옷 속에 넣었다.
“조용히 자라. 또 귀찮게 하면 진짜 싸운다.”
백리는 한 손으로 턱을 잡고 누웠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숙여 시무단의 입가에 빠르게 입을 맞추곤,
그가 다시 이유 없이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다시 얌전히 누웠다.
이제야 안심이야. 하고 백리는 생각했다.
시무단은 눈 끝으로 그를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욕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쓸모없어지는구나.
3일 후, 편지를 보낸 취병조가 돌아왔고, 다시 반달이 지난 어느 날.
시무단은 고회양을 따라 다니며 병사를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으며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누군가 와서 말했다.
“손님 몇 분이 찾아왔습니다. 시공자님을 꼭 보자고 하십니다.”
시무단은 눈썹이 불끈하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음흉하게 웃었다.
드디어 오셨군. 오셨으면 이제 못 돌아가십니다. 우리 해적선에 올라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