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그리움
시무단은 멍하니 굳어버린 웃음으로, 무의식중에 다시 물었다.
“너 뭐라고 했어?”
백리는 조용히 다시 말했다.
“나는 널 찾으러 온 거야, 거의 반년 동안 널 찾아 헤맸어. 무단아, 나랑 같이 가자.”
시무단은 평소 일부러 느릿느릿, 둔한 척 연기하던 버릇이 있었기에, 이번엔 진짜 반응이 늦었다. 얼굴엔 더더욱 어리둥절한 기색이 떠올랐고, 한참 후에야 다시 물었다.
“너랑 같이 가자고? 어디로?”
백리는 대답했다.
“나는 지금 평양성에 머물고 있어.”
이번엔 시무단이 반응했다.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면서도 입에서는 더 느리게, 이렇게 물었다.
“그 먼데까지 가서 제국 수도에 왜 간 거야?”
그는 백리가 본래 조용한 성격이라 북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어릴 적 자신이 장난치지 않으면 백리는 거의 반응이 없었고, 창운곡에서 다른 요괴 아이들도 그의 앞에서는 말소리조차 낮추었었다. 시무단은 말을 이어갔다.
“평양성은 매일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평일에도 장날보다 더 시끄러울 지경인데, 네가 언제부터 그런 북적이는 데를 좋아했냐?”
이 말에 백리의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지며 말했다.
“난 사람 많은 거 싫어해.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너만 괜찮다면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나자. 남영이나 촉나라로 가도 돼. 어때?”
시무단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고, 장난스레 말했다.
“듣자하니, 마치 네가 나랑 도망가자고 하는 것 같은데?”
백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게 바로 내 뜻이야.”
시무단은 입에 머금고 있던 술을 땅바닥과 토실토실한 토끼의 털 위에 다 뿜어버리고, 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백리는 일어나 그의 등을 다독이며 웃었다.
“그렇게 급하게 마실 건 뭐야, 내가 너한테서 뺏어 먹을 것도 아닌데.”
시무단은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마음속은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이 몰려왔다.
겨우 숨을 돌린 그는 손을 내저으며, 몸을 약간 옆으로 틀어 백리의 손을 피하고는 말했다.
“리자, 잠깐 앉아 봐. 너랑 할 얘기가 있어.”
백리는 말없이 그의 옆자리에 바르게 앉았다. 그런데 시무단은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
두 남자가 나란히 앉아 밥 먹는 게 뭐 이리 이상한 일인지…… 아무리 독방이라 아무도 보지 못한다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그는 맞은편 빈자리를 흘끗 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리자, 맞은편에 앉아.”
백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마음은 사실 누구보다도 세심해서, 시무단이 자신을 은근히 멀리하는 걸 느꼈다.
어릴 적 함께 산골짜기에서 지내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 사람조차 자신과 나란히 앉는 것도 불편해하는 걸까?
백리는 말없이 맞은편으로 옮겨 앉으며 말했다.
“말해.”
시무단은 얼굴의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술잔을 가득 채운 뒤,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리자, 넌 내게 남이 아니다. 그래서 돌려 말하지 않을게.”
백리는 한 번도 이런 진지한 시무단을 본 적이 없어, 오히려 감격스러워 바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시무단이 말했다.
“네가 평양성에 몸을 숨긴다, 그건 괜찮아. ‘시끄러움 속의 고요, 큰 은신은 도심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냐. 그 황제, 그자는 예전에 구록산에서 일곱 개의 산등을 밝혀 대건의 70년 국운을 빌었다지? 태부 안회보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하지만 고작 인간 하나가 죽었다고 꺼진 등불이 다시 켜질까? 그 70년도 평탄하게 흘러갈 것 같진 않다. 하늘이 그렇게 만만하겠냐?”
백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며 듣고 있었고, 그 눈빛은 그저 시무단을 가득 담고 있는 듯했다.
그가 얼마나 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시무단은 말을 이어갔다.
“네가 평양에서 무슨 일을 하려는지는 묻지 않겠다. 다만 이 세상이 혼란해질 테니, 그건 네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해. 조심해라. 제국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 마라.”
백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두 사람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백리가 조용히 말했다.
“네 말, 다 알아. 하지만…… 네 뜻은, 나와 함께 가고 싶지 않다는 거야?”
시무단은 술잔을 들고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며 마셨다.
‘은혜도 갚지 않았고, 원한도 갚지 않았다. 내가 어찌 떠날 수 있을까?
이 세상 삼계팔천의 인과가 나를 끌고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이 곧 복잡한 곳이다.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부님은 왜 죽었고, 강화 선배는 왜 죽었겠는가?
그가 대답하지 않자, 백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네가 나랑 함께 가줄래?”
시무단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 이유 없이 날 데리고 평양까지 가려고?”
백리는 입술을 다물고 참던 말을 삼킨 듯했다.
눈빛이 더욱 깊어졌고, 천천히 말했다.
“나는 너에게 인과를 졌어.”
시무단은 대꾸했다.
“네가 날 동굴 밖으로 던져서 살려줬잖아. 그걸로 끝난 거지.”
백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야. 넌 원래 날 구하러 온 거였어. 네가 없었으면 난 벌써 백자의에게 기둥에 못 박혀 죽었을 거야. 우리 둘 사이는… 다 못 갚아.”
그 말은 이를 악문 듯했다. 시무단은 곧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역시나 백리의 다음 말은 이랬다.
“평생 갚아도 못 갚아.”
그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졌고, 눈빛은 냉랭하게 빛났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처럼,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는 냉혹한 의지와 광적인 집착이 번뜩였다.
시무단은 속으론 놀랐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뭐야, 날 살찌워서 잡아먹으려고? 그전에 네가 먼저 파산할걸?”
하지만 이번엔 백리가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차갑게 시무단을 응시했고, 시무단은 그 시선에 말끝을 흐리며, 결국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넌 내 사람이야.”
백리는 무심한 듯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내가 널 찾았어. 넌 언젠가 반드시 나랑 같이 가게 돼.”
이번엔 시무단이 먼저 반응해서 술을 뿜지 않았다.
그는 고통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얼굴을 굳혔다.
“백리,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백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안 해. 예전엔 네가 어려서 이런 말 안 했던 거지, 지금은 다 알 나이니까, 나도 더는 돌려 말하지 않을게.”
시무단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백리를 바라보았다.
재미있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감히 웃을 수는 없었다. 머리는 크지만 마음은 작은 이 반요가 부끄러워 화를 낼가봐 두려워서였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손을 내밀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백리의 손을 잡았다.
백리는 놀라서 표독스럽고 냉랭하던 얼굴이 바로 누그러졌다.
시무단은 물었다.
“내 손 딱딱하지 않아?”
백리는 의아해했다.
시무단의 손은 모양은 좋았지만, 피부는 거칠고, 손바닥과 손가락엔 굳은살이 많았다. 자세히 보면 상처 자국도 제법 있었다.
시무단은 그 틈을 타 설득하듯 말했다.
“봐라, 남자는 온몸이 딱딱하고, 냄새도 나고, 키도 크고, 방에 남자 둘만 있어도 좁고 답답해. 하지만 여자는 달라. 방 안 가득 여자가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아. 다들 예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향기롭고, 목소리도 곱고, 조그만 공간도 포근하게 만들어.
그리고 여자는 아이도 낳을 수 있어. 밤에 예쁜 여자를 안고 자면 꿈속에서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백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손을 반대로 움켜쥐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
“그럼 너, 해봤다는 거야?”
시무단은 멈칫하며 약간 당황해 말했다.
“어… 그건 아니고.”
그리고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예부터 음양이 조화되어야 세상이 바르다고 했어. 넌 예전에 창운곡에 있어서 몰랐겠지만, 남자는 여자랑 있어야 하는 거야. 네 아버지도 네 어머니랑 있었으니까 네가 태어난 거지.”
백리는 대꾸했다.
“차라리 그들이 날 낳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시무단은 말을 잇지 못했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마. 난 오히려 그들이 이룬 공로가 적지 않다고 생각해. 안 그랬으면 내가 널 어떻게 만났겠어.”
백리는 기뻐하며 물었다.
“네 말은, 네가 날 좋아한다는 뜻이야?”
“좋아해——당연히 좋아하지.” 시무단은 신중히 말했다,
“넌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형제야. 다만 형제일 뿐, 그... 평생을 함께할 사람이랑은 달라.”
백리가 손을 쥐고 있는 힘이 약간 느슨해진 걸 느낀 시무단은, 기세를 몰아 말했다.
“형제는 널 위해 칼날도 맞설 수 있어. 지금 네가 다시 누군가에게 기둥에 못 박힌다 해도, 내가 알게 된다면, 혼자서라도, 목숨 걸고 널 구하러 갈 거야. 네게 경사가 있으면, 난 술 두 항아리를 들고, 너와 함께 서까래 위에 앉아 밤새도록 마실 수 있어. 네게 화가 닥치면, 난 반드시 칼산 불바다라도 마다하지 않아.”
그가 백리의 표정이 좀 누그러진 걸 보고, 천천히 손을 뽑아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떤 형제도 너랑 평생을 함께할 수 없어. 어떤 형제도 매일 너와 눈 맞추고 정답게 부대낄 수 없어. 어떤 형제도 네 옷을 꿰매고 아이를 낳아 줄 수 없어——오직 네 여인만이 너와 그런 삶을 함께할 수 있어.”
“그래?”
백리의 얼굴에 멍한 표정이 떠오르자, 시무단은 자기가 한 말이 통했구나 싶어 이어서 말했다.
“그렇지, 이 광대한 세상 속에, 붉은 인연과 남녀가 가득하니, 그중엔 분명 네가 그녀와 맹세를 나누고 손을 잡고 함께하고 싶은 이가 있을 거야. 언젠가 네가 그녀와 혼인을 맺고 싶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네가 하루만 안 봐도 삼년같이 느껴지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마음이 찢기고, 한번 헤어지면 홀쭉해질 정도의 사람이겠지. 그런 애틋한 그리움과 뒤척이는 맛은, 사람을 죽게도 살게도 만들 수 있어. 하지만 봐봐, 너랑 나는 십 년 동안 못 봤어도, 각자 잘 살고 있잖아?”
백리는 찡그리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네 좋은 형제일 뿐이야.” 시무단은 웃으며 말했다.
“넌 산속에 오래 있었고, 마교에 빠지기도 했지. 외부 사람과 접촉이 없으니 형제 친구가 좀 부족했던 거야. 인간 세상에 익숙해지면, 이런 도리를 자연히 알게 될 거야.”
백리는 고개를 숙였고, 말은 없었지만 그 공격적인 기세는 수그러들었다.
시무단은 밥값을 내려놓고, 한 손엔 토끼를 들고 다른 손으론 백리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가자, 멀리서 온 거니 서두르지 말고, 내 집에서 며칠 묵고 가.”
백리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 함께 걸어갔다. 그는 시무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직도 이런 헛소리로 날 속이려고 하는 거야. 한동안 반응도 안 하고, 같이 가줄 생각도 없어. 너무 무리하면 곤란해. 어쨌든 시간 있으니 한동안은 상대해도 괜찮아. 그래도 안 되면 강제로라도 해 볼 거야.'
그는 이렇게 마음을 정했기에, 마침내 시무단은 그가 ‘조금은 정상’으로 돌아온 걸 알아채고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제는 달려들며 같이 도망가자고 외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시무단은 해가 거의 지기 시작할 무렵, 백리를 데리고 대영지로 돌아왔다——이전엔 여기가 고길왕부였고, 그 이전엔 고길성의 성주 저택이었다.
고길성은 비록 크진 않았지만, 성주 집은 매우 으리으리했다. 뜰 안의 고풍스러운 ‘유상곡수’나 작은 정자, 인공 산수 등은 다소 조잡하고 억지로 운치를 흉내 낸 듯했지만, 멍충이 같은 맹충용 같은 속물 건달을 속이기엔 충분했다.
몇몇 사람들이 차례로 정원 안으로 이사했고, 대충 정돈한 후, 옛 성주의 첩이 쓰던 방을 차지했다.
시무단이 토끼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맞은편에서 취병조가 날아왔다. 그것도 토끼를 기억하는 듯했고, 시무단은 손을 놓았고, 그 한 쌍의 금수는 한쪽으로 달려가 상봉했다. 마침 맹충용과 이사낭이 안에서 나오던 길이었고, 맹충용은 그걸 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 강아지는 귀가 왜 이렇게 길어? 어디서 데려온 거야?”
이사낭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엔 토끼 같은데요? 꼬맹이야, 이렇게 살찐 토끼를 사다니, 혹시 안주거리로 삶아먹을 셈이냐?”
시무단이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토끼가 아무리 살쪄도 멍청한 고깃덩어리일 뿐인데, 사자누님이 기름 한 숟가락에 볶은 어제 밥만도 못하죠.”
이사낭은 그의 머리를 톡 쳤다.
“요 꼬마 원숭이, 입만은 달콤하구나.”
시무단이 말했다.
“입이 달아야 입복도 있는 법이죠.”
이사낭의 시선은 이미 백리에게 가 있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세상에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다니 싶었다. 곧바로 시무단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됐어, 나이도 제법 먹었으면 예의를 좀 배워야지, 말장난만 하지 말고, 손님은 제쳐놓고 뭐 하는 거야.”
시무단은 백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리자, 이분은 내가 결의 형제로 삼은 사자누님 이여상이고, 저분은 오형 맹충용이야. 나중에 내가 다시 대형과 삼형도 보여줄게. 사자누님, 이 친구는 내가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동생인데, 오랜 세월 연락이 끊겼다가 오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어. 이거야말로 인연 아니겠어?”
몇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다. 백리는 시무단 체면을 봐서인지, 말수는 적었지만 예의는 지켰다. 그는 이사낭이 시무단이 사는 작은 뜰에서 자기 방을 준비해주는 걸 냉정히 지켜보았고, 고맙다는 감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경계심을 품으며, 시무단이 했던 그 황당한 ‘여자’ 이야기를 떠올렸다. 속으로 생각했다.
‘설마 이 여자야?’
그러나 그는 시무단의 무심한 시선이 휙 스쳐 지나가는 찰나, 재빨리 생소한 사람 앞에서의 약간 어색하고 주춤거리는 표정으로 바꿔 보였다.
기미 하나 보이지 않게… 정말 신기한 능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