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선서(仙逝)
모든 것이 고요했다. 초승달은 밤하늘에 숨어 있었고, 그 덕에 하늘 가득한 별빛이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한 청년이 마당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갓 감아 반쯤 마른 머리카락을 뒤로 늘어뜨린 채, 얼굴 반을 가린 채 앉아 있었으며, 약관 즈음의 나이에 눈매가 또렷하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몸집은 마른 편이지만 허약하진 않았고, 키가 훌쩍 자란 듯한, 뼈대에 비해 살이 따라오지 못하는 그런 청년 같았다.
그는 소매를 걷어 팔을 드러낸 채, 앞에 화로와 한 묶음의 지전(紙錢)을 놓고 누군가를 위해 장례를 치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손엔 큰 사발 면을 들고 국수를 퍼먹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론 지전을 화로에 넣고 태우고 있었다. 두 손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 두 가지를 아주 능숙하게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볼은 잔뜩 부풀어 있었고, 화로엔 종이가 활활 타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사발 속 면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젓가락 끝에 숨어 있던 반숙 계란 하나가 찔려 나왔다.
바로 그때, 마당 안 방 중 하나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체격 좋은 네모난 얼굴의 사내가 옷을 걸치고 나왔다. 밤중에 잠이 깼는지, 하품을 하다 마당에 있는 사람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 시 꼬맹이, 너 거기서 뭐하는 거냐?”
마당에 앉아 있던 이는 바로 몇 년 전 구록산을 탈출한 뒤 행방이 묘연했던 시무단이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불빛에 비친 잘생긴 얼굴로 입에 계란 반쪽을 문 채로, 모호하고 느리게 말했다.
“종이 태우고 있어요.”
사내는 그의 이마를 짚어보며 말했다.
“열은 없는데……”
시무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계속 계란을 씹었다. 면 냄새가 진동하자 사내의 배에서 수상한 소리가 났고,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시무단의 손에 들린 사기 그릇을 보고 욕을 퍼부었다.
“이 자식아, 한밤중에 또 몰래 먹냐? 그것도 계란까지!”
“몰래 먹은 거 아니에요.” 시무단은 혹시 뺏길까 싶어 계란을 꿀꺽 삼킨 뒤, 남은 국수도 후루룩 마무리하고 입을 닦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다.
“사숙이 나 주려고 따로 만들어준 거예요.”
“개소리 마라, 왜 너한테만 따로 줘,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
시무단은 지전을 한 줌 더 화로에 넣으며 뻔뻔하게 말했다.
“내가 잘생겼으니까요.”
사내는 그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그래 꽃미남.”
시무단은 침착하게 머리를 정리하며 사내를 한번 훑어보고는 말했다.
“곰탱이.”
“뭐야 이 자식아!”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곧 생각이 난 듯 물었다.
“면 더 있어?”
“부엌 가면 돼요.”
사내는 배를 문지르며 부엌으로 향하다 말고 다시 돌아서며 물었다.
“계란은?”
“없어요, 다 먹었어요.” 시무단은 여전히 쭈그리고 앉은 채 팔을 길게 뻗어 사발을 건네며 말했다.
“나도 한 그릇 더, 국물 많이.”
사내는 그의 뒤통수를 툭 치며 욕을 내뱉었지만, 결국 사발을 들고 갔다.
잠시 후, 마당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지전과 화로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내일 사숙이 물어보면, 네가 다 먹었다고 해라, 알았지?”
시무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는 국수를 먹으면서도 괜히 울적했는지, 시무단을 곁눈질로 보며 중얼거렸다.
“왜 맨날 너만 챙기시냐?”
“내가 키가 크니까요.” 시무단이 대답했다.
“너는 먹으면 살찌잖아요. 우리는 돼지 키우는 장사도 아닌데.”
“너는 부끄럽지도 않냐, 다 큰 놈이 무슨 키가 크긴?”
“스물셋도 클 수 있어요.” 시무단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됐어요, 말해봤자 이해 못 할 거예요. 면이나 드세요. 다 먹고 그릇 씻기나 하시고.”
사내는 억울한 얼굴로 눈을 치켜떴지만, 시무단이 바로 받아쳤다.
“공짜면 말 못 해요.”
결국 사내는 시무단 말에 말문이 막혀 억지로 국물을 벌컥 마셨다.
그렇게 두 사람은 잠시 조용해졌다. 시무단은 빈 그릇을 옆에 놓고, 화로 속 불길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그의 눈 속에서 일렁이며 깊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사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 팔꿈치로 그의 어깨를 찔렀다.
“조상님 제사 지내는 거냐?”
“누가 방금 돌아가셨어요. 한 선배 보내드리는 중입니다.”
“뭐라구? 누가? 무슨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왜 나는 몰랐지?”
“모를 거예요. 촉 지방에 계셨던 제 지인입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시무단은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또 별이야?” 사내는 입을 찡그리며 다시 면에 고개를 묻었다.
“이놈아, 네 나이에 뭘 그렇게 신령한 척하고 다니냐, 그러다 평생 장가도 못 간다.”
“어제 육삼 형네 집 루어가 저한테 시집온다던데요.”
“닥쳐라, 루어는 세 살 반이거든—별이 사람 생사도 알 수 있냐? 그럼 내 죽을 날도 한번 맞춰봐라?”
시무단은 대꾸하지 않았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사람의 명성이 오늘 밤 떨어졌어요. 사실 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가진 건 없어도, 이 지전 몇 장은 제가 드릴 수 있어요. 밤새 태워드릴려고요 저승길 가시는 데 필요한 준비물 챙기시라고.”
사내는 그의 말투가 담담함 속에 묘한 슬픔이 담겨 있어,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슨 소리야, 먼 촉 지방에서 죽은 사람이 너랑 무슨 상관이 있냐? 그게 무슨 인연이라고…”
시무단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왼쪽 볼에 살짝 드러난 보조개는 금세 사라졌다. 그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고, 지전을 손으로 찢어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었다—문방사우, 수레, 소, 말, 학, 토끼, 거문고, 바둑, 책, 그림 등. 손재주가 좋아 손이 가는 대로 무엇이든 생생하게 만들어냈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선배님, 마지막 남은 것들도 다 제게 주셨는데, 저 아래 가시면 외롭지 않게 제가 조금 챙겨드립니다. 별거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사내는 그 말을 들으며 괜히 기분이 언짢아져 한숨을 쉬었다.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려 시선을 돌렸다.
“야, 꼬맹이, 우리가 형제들 데리고 여기까지 먼 길 와서 그 최씨놈 밑에 들어왔는데, 이게 뭐냐? 이런 허름한 마당 하나 쥐어주고, 우리를 이렇게 무시하잖아? 차라리 반란 일으켜서 이 풍수 좋은 곳 차지하면 얼마나 시원하겠냐?”
시무단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물었다.
“그런 말은 왜 큰형한테는 못 해요?”
이 “큰형”은 고회양(顾怀阳)이란 이름의 사람으로, 회남 출신이었다. 타고난 장력과 약간의 학식이 있었고, 정통 과거시험엔 흥미가 없었지만 잡학을 좋아했다. 본래 집도 조금 가진 편이었으나, 몇 해 전 회남에 흉년이 들어 곡식이 한 톨도 수확되지 않았다. 구호금은 수많은 손을 거쳐 다 비어버렸고, 그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생존자들은 떠나고 싶었지만, 지방 관리들은 유민이 소란을 일으킬까봐 성문을 닫아 출입을 막고, 어떤 이들은 활을 쏘기까지 했다.
고회양의 가족은 죽거나 병들어 남은 이는 그와 그의 노모뿐이었고, 노모는 겨우 아들의 등에 업혀 화살은 피했지만, 그 충격에 며칠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로써 고회양은 혼자가 되었다. 그는 머리가 똑똑하고 말도 잘했으며, 의리도 있어 유랑길에서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심지어 무림의 유협들과도 교류가 있었고, 결국 분노 끝에 이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마침 대건국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었고, 성 안의 병졸들은 백성만 괴롭힐 뿐이었기에, 고회양의 봉기는 곧 대세가 되었다. 혼란 속에서 실수로 태수를 죽이기까지 하자, 그는 아예 관청을 점령해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했다.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있었다. 조정은 단순히 회남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으로만 알고 있었고, 국고는 텅 빈 지 오래라 전쟁을 감당할 여력도 없었다. 그리하여, 어찌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회양을 달래기 위해 그에게 “충용후(忠勇侯)”의 작위를 내리고 지역 수비를 맡겼다.
하지만 고회양도 바보가 아니었다. 황제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을 알고, 과감히 어명을 거부했다. 나아가 주변 산적 무리들과 손을 잡고, 왕 노릇을 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이 시기 대륙 전역은 이미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각지에서 사람들이 봉기했고, 규모는 작지만 마치 대건국이라는 화려한 겉옷 위에 붙은 벼룩처럼 여기저기서 들끓고 있었다. 눌러도 눌러도 튀어나오니 매우 성가셨다.
황제는 본보기로 고회양을 치기로 결정했다. 고회양은 어명을 거역하며 스스로 화살받이가 되었고, 황제가 토벌을 명하자 군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다. 고회양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돈도 무기도 없이, 겨우 부엌칼과 삽을 든 가난한 형제들만 데리고, 안경(安庆)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자칭 "안경왕"이라 부르는 최호(崔护)에게 의탁했다.
기묘한 인연이었는지, 그 해 시무단은 구록산의 한기 어린 샘물에서 헤엄쳐 나오다 얼어 죽을 뻔했었다. 온몸이 얼어붙을 지경이었고, 오직 가슴 속 마지막 숨결 하나로 간신히 버텨 몇 리를 걷다 길가에 쓰러졌다. 때마침 산적들과 접촉 중이던 고회양이 그를 발견해 데려갔다.
이윽고, 구록산 주변을 맴돌던 취병조가 시무단을 따라 날아왔고, 이 신령스러운 새가 갑자기 등장하자 무리들이 깜짝 놀랐다. 고회양은 시무단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 그를 거두었고, 회복 후 이야기를 나누다 의기투합하여, 시무단은 그렇게 반란군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어느 날 한 마리 선학이 시무단에게 꾸러미 하나를 가져왔다. 열어보니, 오십 줄의 비파(瑟)와 몇 권의 고서가 들어 있었고, 펼쳐본 순간, 그 내용이 범상치 않음을 알았다. 제대로 익히면 천기를 깨달을 수 있는 고대의 학문이었다. 그 안엔 쪽지 하나가 있었고, 거기엔 “스스로 잘 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으며, 서명은 "강화"였다.
강화는 왜 그를 도운 걸까?
시무단은 오래도록 생각했다. 아마도 강화는 인과를 피하려다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고, 마지막에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마음의 평안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그에게 경서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사부님은 시무단을 내보내기 전 강화에게 무언가를 당부했을 것이다. 그 내용은 지금 알 길이 없지만, 강화가 이번에 세속의 인연을 다시 끌어안음으로써, 세속을 떠나 백 년을 수련한 고고한 삶이 파탄 날 가능성도 있었다.
“선인은 속세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 들이면 수명이 다한다.”
과연, 지금 겨우 4년이 지났다.
시무단은 지전을 한 줌 더 집어 천천히 화로에 넣었다.
대식가이자 고회양의 결의형제 중 하나인 맹충용(孟忠勇)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대형한테 말했더니 욕만 잔뜩 먹었어. 그래서 나한테 너한테 대신 물어보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