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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슬(priest)

금슬 21장

제21장 벽사

구록산에 한밤중 불빛이 환히 켜지자, 비탄은 보고를 듣고는 술병을 반애의 얼굴에 내던지며 발을 구르며 욕을 퍼부었다.
“너… 너 정말 잘했구나!”

반애는 얼굴에 흘러내린 술을 닦으며 냉소했다.
“사형,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도 제 말을 믿지 않으십니까?”

비탄은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힘껏 찌르며 욕했다.
“이러면 사람들이 우리를 두고 배은망덕하고, 장로로서 자비도 없다고 욕할 거 아니냐!”

반애는 반걸음 물러섰다.
“사형, 단호히 끊지 못하면 그건 여인의 자비에 불과합니다.”

비탄은 화가 나서 몸을 떨며 말했다.
“그는 아직 어린애에 불과해…”

“하!” 반애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는 어리지만 속셈이 없다고? 그럼 왜 그동안 사형이 온갖 대비를 했음에도 제대로 된 인재 하나 키우지 못했고, 고작 손가락 길이만 한 붉은 밀랍 하나에 우리 제자들이 모두 제압당한 겁니까?”

비탄은 찡그렸다—이건 좀 창피한 일이었다. 원래는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반애는 성격이 너무 솔직해서 사형의 체면을 생각하지도 않고 더 다가오며 말했다. 등불 아래 그의 얼굴엔 섬뜩한 기색까지 서려 있었고, 현종의 청촉과 닮은 구석도 있었다.
“사형, 눈치 못 채셨습니까? 그 옛날 현종 제자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도조 그 늙은 귀신은 왜 하필 그 꼬마 하나만 눈여겨봤겠습니까? 그가 어찌 연못 속 물고기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 그를 놓치면, 훗날 반드시 큰 화가 될 것입니다!”

비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반애는 마치 애도하듯 슬픔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사형!”

비탄은 방 안을 천천히 걸어 다니다가, 책상 뒤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고 손을 휘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거라.”

반애는 기뻐하며 외쳤다.
“예!”

“잠깐.” 비탄이 그를 불러 세우고, 옆 책장 위에서 등불 하나를 꺼내 망설이다가 반애에게 건넸다.
“5년 전, 내가 그를 보러 갔을 때, 그의 소지품 중에 별반이 하나 있었는데, 색깔을 보아하니 대흉지물(대단히 흉한 물건)이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 위에 ‘벽사’를 살짝 심어두었다.”

반애는 더욱 기뻐하며 물었다.
“그럼 그걸로 그 놈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비탄은 말했다.
“이 등을 켜면 그림자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그를 찾거든…… 오랜 정을 생각해서, 그의 목숨은 해치지 말고, 데려와 나에게 보게 하거라.”

반애는 등을 받아들고 사형이 우유부단하긴 해도 선견지명은 있다고 여기며 흡족한 마음으로 문을 닫고 나갔다. 비탄은 그가 밖에서 “산을 수색하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등불 옆에 앉아 촛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촛불을 집으며, 시시때때로 장난치던 시절의 시무단을 떠올렸고, 마음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고였다.

비탄은 생각했다.
“내가 악인이 된 것인가?”

국전에서 별의 이변을 관측한 그는 대건국(大乾國)의 국운이 끝났음을 깨달았고, 앞으로는 천재지변과 인재가 잇따를 것이라 여겼다. 그 고통을 겪을 자는 결국 백성들 아닌가? 그런데 사형은 왜 하늘의 뜻에 따라 국운을 빌려보려는 제안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인가?

이건 사욕이 아니라 정의였다.

비탄은 자신이 나라에, 백성에게 부끄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왜 사형은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시무단은…

반애의 말로 보아, 그는 이미 현종을 떠날 계획을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것 같았다. 비탄은 생각했다.
“이 산에서 누가 그에게 못해준 게 있었던가? 5년 동안 그 아이의 먹고 자는 것은 누구도 소홀히 하지 못했다. 어릴 때 고약한 약을 훔쳐 마셔 몸이 상해, 겨울밤엔 찬바람만 맞아도 기침을 했는데, 내가 직접 약을 지어다 보내주기도 했지. 누가 그에게 해꼬지할까봐 전임 장문인의 거처에 경비도 철수하지 않았고…”

비탄은 혼잣말했다.
“도대체 너는 사숙이 무엇을 더 해줘야 하느냐?”

돌덩이라도 품에 오래 안고 있으면 따뜻해진다고 하지 않느냐?

구록산의 소란에 안진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하인을 보내 사정을 알아보게 했다. 하인이 돌아와 보고했다.
“대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산 전체를 수색 중인 듯합니다. 비탄 진인 쪽에 가서 사정을 알아볼까요?”

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없다. 우리는 그저 손님일 뿐, 남의 집 일에 참견할 필요는 없지.”

그 말과 함께 그는 고개를 숙여 남은 책 반 권을 등불 아래서 읽기 시작했다.

그 밤, 잠 못 이루는 이가 얼마였을까?

시무단은 하늘을 뚫는 능력은 없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딛고 관문을 지나가며 쫓는 자들을 피해 숨어 다녔다. 뒤를 돌아보니, 구록산 여기저기에 불빛이 반짝이며 칼과 검을 든 자들이 그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

하산하는 길은 이미 막혔다. 창운곡으로 가는 길도 단단히 봉쇄되었을 것이 분명해, 그는 산벽을 타고 숲을 이용해 몸을 숨겼다. 다행히 다른 기술은 5년간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도조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원숭이 공”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이처럼 큰 구록산에서 사람 하나를 잡는 건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일일 텐데, 시무단은 조심스럽게 움직였음에도 쫓는 자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산벽 뒤에서 멈춰 선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설마 내 몸에 뭔가를 심어둔 건가?”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자신이 날아다니는 ‘동문’들과 달리 도보로 도망치는 이상 곧 잡힐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품에 안긴 토끼 요괴 바라보고는 그것을 땅에 놓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우린 여기까지 인연이다.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마라, 가거라.”

토끼는 움직이지 않고 풀숲에 웅크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망울이 너무 순해서, 시무단은 도저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가라니까. 이 산이 아무리 커도 네가 숨을 곳은 있을 거야.”

토끼는 통통한 몸을 이끌고 그의 다리 밑으로 와서는 바짓가랑이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시무단은 웃음을 터트렸다. 땅에 쪼그려 앉아 토끼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었다.
“토끼 형님, 나도 의리를 저버리고 싶진 않지만, 지금 내 처지가 말이 아니잖아. 너까지 끌어안고 다니다가, 난 단칼에 죽고 넌 이 뚱뚱한 몸 때문에 끓여 먹힐지도 몰라. 그 생각만 해도 불쌍하단 말이야. 네가 좀 수련했다지만, 나와 엮이면 그 업보는 어쩔 거야?”

“혹시 나한테 몸 바치라는 건 아니겠지?”
시무단은 오싹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에휴… 네가 나중에 여자가 된다 해도, 그 엉덩이는 내가 감당 못 해.”

토끼는 그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길을 바라며 또 머리를 내밀었다. 시무단은 손가락으로 토끼 이마를 툭 쳤고, 토끼는 움찔했다. 그리고 그는 단호히 일어섰다. 지금 그는 토끼보다 훨씬 커보였고, 거의 닿을 수 없는 존재 같았다.

“됐어, 청산은 변치 않고, 녹수는 흘러간다. 내가 만약 살아남는다면, 나중에 신선한 채소나 바구니에 담아 줄게.”

그는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단호하게 떠났다. 마음은 텅 빈 듯했고, 스쳐 지나간 외로움도 밤바람에 사라졌다.

이 광활한 세상, 수많은 생명들 속에,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도, 정작 자신과 관계된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사부님도, 백리도, 다 사라졌고, 강화 선배는 수련자라, 예전엔 그가 만든 육회진을 깬 걸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 다만 세속의 얽힘을 보고, 출세한 자로서 원칙을 지켜 침묵한 것이겠지.

그래도 그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시무단은 무표정하게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그는 급히 자리를 떠났기에, 멀리 떨어진 뒤에야, 자신이 버려둔 토끼 요괴가 갑자기 땅바닥에 늘어졌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몸 위로 희미한 하얀 그림자가 피어오르더니, 그것은 소년의 형체를 닮았지만 너무 희미해서, 마치 연기 같았고, 작은 바람만 불어도 금세 흩어질 듯했다. 얼굴도 흐릿해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시무단이 멀어져가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무단은 자신이 몸에 무언가를 당한 게 아닌지 생각하면서, 가시덤불과 숲, 바위를 뚫고 초조하게 내달리며 초소를 우회했다. 추격자들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는 마침내 창운곡과 접한 절벽에 도달했다.

그가 뒤돌아보니, 산속엔 여기저기 횃불이 반짝였고, 멀지 않은 곳에 반애 진인이 등을 들고 직접 그를 쫓고 있었다. 시무단은 그 부자연스러운 그림자에 눈길을 주었고, 그것이 정확히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그때, 그의 몸속에 있던 별반이 희미하게 요동쳤다. 시무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그랬던 거군.”

그는 별반을 꺼내어 별의 흐름을 살폈다. 손으로 별의 선을 끌어내 보니, 그 안에 아주 가늘고 미세한 벽색의 실 한 가닥이 숨겨져 있었다.

시무단은 웃으며 말했다.
“비탄 사숙, 정말 세심하시네요.”

반애는 멀리서 시무단이 별반을 한 손에 들고, 벼랑 끝에 등 돌린 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서 소리쳤다.
“이놈아! 네가 눈치가 있다면 어서 내려오고 순순히 잡혀라!”

시무단은 그 벽색 실을 끊어내며, 입으로 몇 마디 주문을 읊조렸다. 별반의 별들이 요동치며, 그는 집중해서 별반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반애 사숙, 생사의 운명을 바꾸고, 필부에게 수명을 빌려도 자손에게 화가 미치는데, 하물며 대국의 황실 운명을 건드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십니까?”

반애는 멍해졌다. 그 말은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별의 실이 수천 갈래로 시무단 주위를 감쌌고, 바람은 그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소매를 부풀렸다. 그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바람에 실려 날아갈 듯했다. 어둡고 기이한 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였고, 잠시나마 반애는 그가 시무단이 아닌 도조처럼 보였다.

“국운은 이미 바뀌었고, 팔방이 무너질 국면은 정해졌습니다.”
시무단은 흐린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건 제가 사부님이 남긴 마지막 국에서, 오랜 5년을 들여서야 알아낸 겁니다.”

반애는 냉소하며 말했다.
“헛소리 마라!”

시무단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별반의 별빛은 점차 사라지고, 별실이 모두 거둬졌다. 시무단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웃었다.
“하계의 매미에게는 겨울의 얼음을 말할 수 없지. 너 같은 멍청이와 말 섞을 필요도 없군.”

반애의 눈이 부릅떴다. 그 누구도 감히 자신에게 이런 무례를 범한 적은 없었다. 그는 옆 제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와라!”

장숭문은 곧바로 이해하고 활을 양손으로 들고 그에게 건넸다. 반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은 네 목숨을 살려보겠다고 하셨지만, 너는 감히 사부를 배반하고 조상을 욕되게 했으니, 이 늙은이가 독해져도 탓하지 마라.”

시무단은 큰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은 산을 울릴 만큼 맑고 청명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사숙을 귀찮게 해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별반을 안고 아무런 주저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모두가 놀라서 멍해졌다. 장숭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숙, 이건…”

반애는 손을 휘저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수색해! 산 아래를 샅샅이 뒤져라. 이 놈이 그렇게 간단히 죽을 리 없다. 분명 또 무슨 꿍꿍이가 있다.”

물론 시무단에겐 퇴로가 있었다. 어릴 때 뒷산을 수도 없이 드나들며, 이 절벽 아래에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나무는 영물은 아니지만 수백 년을 살아온 거목이라, 뛰어내리면 그 가지에 딱 걸리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 백리도 이 수법으로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지가 몸을 때리는 충격은 매우 아팠다. 시무단은 몸을 웅크리며 찬 숨을 내쉬었다.
“나무 할아버지,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하십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아래를 힐끗 내려다본 뒤, 숙련된 동작으로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갔다. 가지를 움켜쥐고, 몇 번의 동작으로 돌 위에 발을 딛고는 한 번에 튕겨 올라, 좁은 오솔길 같은 흙길 위에 착지했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연못이 있고, 예전에 백리가 말하길, 그곳은 산 밖으로 이어지는 생수의 통로라고 했었다.

시무단은 연못가에 도착해 손을 넣어보았다.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는 망설일 겨를 없이 겉옷과 물건을 단단히 묶어두고, 몸을 문질러 체온을 끌어올린 뒤,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고기처럼, 깊은 물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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