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슬(priest)

금슬 17장

제17장 산속


그날 밤, 시무단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토끼 요괴와 취병조를 풀어주고는 마치 힘이 다 빠진 듯,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고—마치 방금 뇌를 너무 많이 써서 이제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차 한 잔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반응을 되찾았고,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뜨고 보니 온 세상이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을 보려 하면 짙은 안개가 길을 막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전부 거짓말 같았다.

시무단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가슴을 움켜쥐고, 입꼬리가 아래로 당겨지며 갑자기 통곡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표정만 자리를 잡고, 울음소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얼른 손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신발을 벗고 맨발로 조심스럽게 바닥을 딛고 도둑처럼 창가로 기어갔다. 창밖을 살펴보니, 문 앞의 마당에는 감시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안심하고 돌아가서 다시 울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앉자마자, 방금 막 올라왔던 눈물이 또 다시 억눌려 사라졌고, 답답함만 더욱 심해졌다.

이틀 밤낮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 버려, 그는 지치고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머리만 베개에 닿자마자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반쯤 자고 반쯤 깨어있는 상태에서, 그는 갑자기 몸을 덜컥 떨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고, 몸을 돌려 한쪽에 놓아둔 보따리를 열어 별반을 품에 안았다. 또 작은 단검 하나를 꺼내 베개 밑에 숨기고, 머리로 덮은 뒤, 한 손으로 껴안은 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누웠다.

다음 날, 비탄이 사람을 시켜 옷을 가져다주었다. 시무단은 잠시 망설이다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옷을 코 밑에 가져다 대고 조심스레 냄새를 맡아봤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복을 입었다.

그가 도조의 뜰을 떠나자마자, 누군가 그를 은근히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시무단은 속으로 계산했다. ‘도망가는 건 당분간 무리겠구나. 이 사람들이 날 어떻게 하려고 하지?’

그는 천성적으로 기쁨과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감정을 잘 숨기는 재능이 있었던 듯했다. 다만 살아온 십여 년 동안은 항상 모두에게 잘 대해왔기 때문에, 이번이 처음으로 누군가에 대해 경계심을 품었고, 그 재능이 드러난 셈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는 그저 조용히 도조의 영전에 머물며 상주 노릇을 하는, 눈물자국도 없는 침울한 아이였지만, 어쩐지 죽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답지 않은 기운이었다.

비탄은 몰래 며칠간 그를 지켜보며, 원래 장난꾸러기 같던 그가 갑자기 말도 없이 얌전해진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철든 소년으로 바뀐 듯했다. 시무단은 원래 별일 없어도 문제를 만들던 성격에, 누구와도 쉽게 친해졌고, 친해지고 나면 입이 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말을 걸어도 그리 대꾸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리고 도력이 부족했다. 아무리 연기를 하려 해도, 마음먹고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작은 흔적이 보이기 마련이었다.

비탄은 알아차렸다. 누군가가 시무단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그는 온몸이 움찔하고 긴장했다가 곧 억지로 평정을 되찾는 듯했다. 표정으로는 열심히 감추려 했지만, 그 움직임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날, 반애가 함께 그를 지켜보다가 비탄에게 조용히 말했다.
“사형, 저 아이…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반애는 비탄의 얼굴을 살피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어 말했다.
“자기는 창운곡에 갔다고 했는데, 그날 황제의 거룩한 행차가 내렸고, 구록산 정상엔 경비가 삼엄했어요. 저 아이가 어떻게 아무도 모르게 제단까지 숨어들 수 있었겠습니까?”

비탄이 천천히 말했다.
“아마도 키가 작아 경비가 놓쳤을 것이다.”

반애는 비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급히 말을 이었다.
“사형, 그가 진짜 몰래 들어왔다 해도, 왜 제단으로 바로 간 거죠? 도조가 계시던 곳으로 가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러자 비탄은 그를 바라보았다.

비탄 진인은 구록산에서 평판이 매우 좋았고, 사람들에게 온화했으며 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명목상 도조가 현종의 장문이었지만, 위엄이 강하고 거리감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정은 오히려 이 사형이 아닌 사제 비탄에게 몰려 있었다. 비탄은 인상부터가 선량한 인상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사형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

반애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제가 보기에 저 아이, 뭔가 알고 있어요. 어쩌면 뭔가 눈치채고, 복수할 기회를 노리려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차라리 뿌리를 끊어버리는 게….”

그러면서 손을 들어 칼로 베는 동작을 하며, 얼굴에는 잔인한 표정이 떠올랐다.
비탄은 얼굴을 찌푸렸다.

반애는 재빨리 덧붙였다.
“사형, 사형께선 인자하시고, 그… 아이도 우리가 키운 것이나 마찬가지니 애정이 없을 수는 없죠. 다만…”

비탄은 갑자기 팔을 들어 반애의 손을 눌러 말끝을 끊고, 말투를 무겁게 하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그만 말하게. 우리 현종은 백 년 동안 명문정파였고, 문하 제자들 모두 바르게 살아왔으며, 설사 불화가 있다 하여도 국가와 천하를 위하여 불가피한 일이었을 뿐이다. 지금 사형은 돌아가셨고, 운을 옮기는 일도 끝났다. 어린 아이 하나 괴롭힐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지만 그 아이가 도조가…”
“그가 알았다 한들 어쩔 셈이냐? 우리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반애가 더 말하려 하자, 비탄은 몸을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분명히 말해두겠다. 무단은 내가 키운 아이다. 좋은 아이다. 설령 장차 문제가 생긴다 하여도,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다. 내가 수십 년 도를 닦았고, 그리 능하지 않다 해도 어린 아이 하나 지키지 못할까? 그 전까지는, 그는 우리 사조(師祖)의 제자다. 그를 해치고자 한다면 먼저 나부터 설득해야 할 것이다!”

 

반애는 비탄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더니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반애는 이를 갈며 속으로 생각했다.
‘창녀 짓은 하고도 절개를 내세우네. 잡초는 뿌리부터 뽑아야지, 호랑이 새끼를 기르면 언젠가 큰일이 날 텐데, 그땐 후회하게 될 거다. 두고 봐라!’

그러나 그는 실력도 비탄보다 못했고, 세력도 못했고, 머리도 못 썼다. 구록산에서 그는 단지 나이 좀 많다는 이유로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전엔 도조가, 지금은 비탄이 중심이었고, 그가 나설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결국 반애는 화를 삭이면서도 다른 수를 쓰지 못하고 돌아섰다.

한편, 비탄 진인은 겉으론 강하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확신이 없었다. 시무단이 드러낸 약점이 적지 않았고, 노련한 자신이 그것을 보지 못할 리 없었다.

칠일 후, 도조의 장례가 치러졌다. 시무단이 처음으로 자신의 방에서 자던 날, 한밤중이 되자 비탄은 참지 못하고 도조의 뜰로 들어갔다. 그는 살금살금 시무단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의 생물 셋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달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시무단은 침대에서 몸을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고, 품에는 무언가를 안고 있었다. 비탄은 몇 걸음 더 다가가 내려다보며 관찰했다. 소년은 깊이 잠들지 못했고, 눈썹이 꽉 찌푸려져 있었다.

비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 어릴 적부터 말썽을 달고 살았는데, 그렇게 깊은 속셈을 가질 수 있을까?’

며칠간 지켜본 바로는, 그는 경계심은 있으나 태도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고, 비탄에게도 큰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애교를 부리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예절은 여전히 정중했다.
‘그가 만약 뭔가를 안다면…’

비탄은 고개를 흔들고 소리 없이 비웃으며, 자기가 생각이 많다고 여겨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시선이 시무단이 품에 안고 있는 물건으로 스쳤다. 어둠 속에서 그 물건은 천으로 싸여 있었지만, 일부는 빛을 내고 있었다.

비탄은 마음이 움직여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시무단의 팔을 피해 천을 살짝 걷었다. 그 안에는 별반이 있었다.

그는 별반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는데, 이상한 흡인력을 느꼈다. 자신의 기운이 손끝으로 조금 새어 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 별반은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귀신불처럼 보였다.

이것은… 대흉의 별반이었다!

별반도 사람처럼, 보통은 주인을 정하지 않지만, 일부는 재료나 기연에 따라 마치 혼이 깃든 듯한 존재가 된다. 예를 들면 도조의 뜰에 있던 그 거대한 별반—바닥은 보천석으로 만들었고, 별모래는 낙천성의 가루였으니, 타고난 신물이었고, 당연히 비범했다. 하지만 지금 시무단이 가진 이것은...

비탄은 몰랐다. 시무단의 이 평범했던 별반은 벼락을 맞고, 악령의 혼을 빨아들였으며, 이후 창운곡의 균열 속에서 숱한 흑기를 흡수했다. 그때 시무단을 지키느라 무리했지만, 원래부터 사기를 머금은 물건이어서 오히려 흑기와 조화를 이루며 큰 이득을 봤던 것이다.

명백히 이 물건은 주인을 인정한 상태였다. 이런 영성이 깃든 물건은, 오직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만 순종하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대흉의 물건이 어린 소년 품에 안겨 있다니…

비탄은 얼굴을 찌푸리며, 반애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다시 스쳐 지나갔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반애의 말이 맞다면? 만약 그가 어린 나이에 이렇게 교활하고, 삼엄한 경비를 피했으며, 제일 먼저 제단으로 향했던 것도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계획적이었다면?’

‘도조가 죽은 내막을 눈치채고도 모든 사람에게 그럴듯하게 행동했다면…’

 

비탄은 생각할수록 점점 더 놀라워졌고, 결국에는 거의 소름이 끼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망설이게 되었다. 이…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이렇게 많은 걸 생각할 수 있다고? 이런 수준까지 할 수 있다고? 그런데도 저렇게 주인을 인식한 대흉물 같은 걸 몸에 지니고 있는 걸 보니, 이 시무단도 겉으로 드러난 착하고 해 없는 모습만은 아닌 듯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의심과 경계가 엇갈려 어지러웠고, 한 손에서는 은근히 자줏빛 기운이 피어오르며 천천히 들어 올려지더니, 시무단의 머리를 향해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침대 위의 소년이 마치 불안한 듯 몸을 뒤척이며 자세를 바꾸었고, 이에 깜짝 놀란 비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피하지도 못한 채, 시무단이 그대로 그의 품으로 굴러들어왔다.

소년은 마치 추위를 느끼는 듯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잡자마자 성반을 펼치며 들러붙었고, 비탄의 몸에 몸을 감아 오기까지 했다. 입으로는 중얼거리며 꿈속 말을 몇 마디 했다.

비탄이 귀를 기울이자, 시무단은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제발 때리지 마세요……”

비탄은 잠시 멍해졌고, 시무단은 그의 옷에 얼굴을 비비더니 이어서 말했다. “사숙…… 살려주세요, 비탄 사숙……”

비탄은 손이 멈추었고, 손에 감돌던 자줏빛 기운은 점차 사라졌다. 그는 시무단의 등을 어루만지며 가볍게 두드리고는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물었다. “사숙이 뭘 살려주면 돼?”

시무단은 “응……” 하고 소리를 낸 뒤 한참 만에야 말했다. “살려줘…… 사부님이 날 안 때리게……”

비탄의 마음이 한순간 부드러워지며 한숨을 내쉬고, 시무단에게 발로 밀쳐졌던 이불을 끌어올려 정성껏 덮어주었다.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주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시무단은 침대 위에서 다시 한 번 몸을 뒤척여 등을 문 쪽으로 돌리고 이불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고 나서 벽을 향해 눈을 떴다. 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시무단은 이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구록산에서 지내게 되었고, 토끼 요괴와 취병조를 기르며, 매일 밖출을 삼가며 조용히 지냈다.

비탄은 처음에는 도조처럼 매일 직접 와서 공부를 가르쳤다. 그러나 시무단은 비탄이 결코 주문이나 무공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매일 마치 장원을 치게 하듯 유가 경서를 줄줄 외게 하거나, 아니면 별수학 책 몇 권을 던져주며 자기는 이 도에 밝지 않아서 잘못 가르칠까 염려되니 스스로 깨우치라고 핑계를 댔다.

시무단도 이에 맞춰, 외우라면 외우고 외우지 말라면 스스로 성반을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한마디로 전혀 진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비탄도 이 어린 사질이 그저 약간 장난기 있는 꾀는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는 재능이 없고, 벽에 붙일 수 없는 진흙덩이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매일 오던 것이 사흘에 한 번이 되고, 결국 현종의 업무가 바빠지고 그 자신도 제자들이 많아 바빠지자 더 이상 시무단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열흘에 한 번쯤 책 몇 권을 가져다주고 형식적으로 한 번 보는 식으로,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먹고 쓰는 것은 단 한 번도 부족함이 없었고, 오히려 산 위 다른 제자들보다도 훨씬 풍족했다.

'금슬(prie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슬 19장  (0) 2025.07.19
금슬 18장  (0) 2025.07.19
금슬 16장  (0) 2025.07.19
금슬 15장  (0) 2025.07.19
금슬 14장  (0) 202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