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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슬(priest)

금슬 14장

제14장 이별

“아야!” 시무단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땅에 무겁게 주저앉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백리는 그의 어깨 움푹 들어간 곳에 얼굴을 기대고 있었고, 마치 고개를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턱뼈가 그의 어깨를 눌러 꽤 아팠다. 멀리서 볼 땐 단번에 백리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딱 붙어 있으니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시무단은 뒤늦게 의아해졌다. 분홍색 뭉치처럼 생긴 작은 여자애가 어쩌다 남자가 된 거지?

하지만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부인”이나 “장모님” 같은 말을 장난처럼 아무렇게나 불러댔어도, 실제로 그런 관계나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입만 험했을 뿐, 마음은 전혀 순수했고, 그래서 지금도 조금 당황스럽긴 해도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그는 약간 어색한 듯 백리의 어깨를 살짝 밀며 물었다.
“너, 작은... 작은 리자야?”

백리는 억지로 정신을 차려 그의 몸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고 낮게 말했다.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어서... 어서 가.”

정말 백리였다.

시무단은 멍하니 생각했다. ‘어떻게 크더니 남자가 되어버린 거지? 그럼 부인으론 안 되겠네.’ 아마도 덜 자란 탓이거나, 분명히 그의 엄마가 잘 보살피지 않은 탓일 거라고, 괜히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역시 사람들이 말하듯 여자애는 열여덟 번 바뀐다더니, 크면서 계속 여자로 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부인이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뭐. 시무단은 금방 받아들였다. 남자가 되었어도 여전히 작은 리자니, 나중에 다른 사람을 부인으로 삼고, 작은 리자는 그냥... 그냥 의형제로 삼으면 되지 뭐.

그때 취평조가 짹 하고 울었다.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약간 초조해하며, 시무단이 뒤돌아보자 화련동 입구부터 땅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고, 점점 더 짙어지는 검은 기운이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은 마치 저 아래가 바로 아비지옥이라도 되는 듯했다.

성반(星盤)의 청빛으로 보호받고 있는 시무단과 백리를 제외하고는, 여우왕 백자의도 땅에 웅크리고 있었고, 귀가 여우 모양으로 변해, 곧 본모습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성반의 청빛은 점점 희미해졌고, 시무단은 가슴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그 지각 틈 앞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백리는 힘겹게 시무단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그의 살 속까지 파고들 듯했으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 어서 가!”

시무단은 급히 일어나 백리에게 이끌려 비틀비틀 몇 걸음 물러났고, 둘은 갈라진 땅을 피해 화련동 안으로 달려갔다. 아마 이 동굴 안에 비밀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백리는 걸으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엔 거의 잿빛이 돌고 있었다. 시무단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작은 리자, 네 몸 작게 만들어. 내가 널 업을게!”

하지만 그는 웅크려 기다렸는데도 백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건... 그냥 변한 모습일 뿐이야.” 한참 후, 백리가 낮게 말했다. 이미 소년이 된 그의 목소리는 살짝 굵어졌고, 지금은 약간 쉰 기색도 돌았다. 복잡한 표정으로 시무단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날 구하러 와줘서 기뻐... 하지만, 그건 널 속인 거야...”

“에이, 알아, 얼른 작아져, 안 그럼 널 못 업어.”
시무단은 거짓말과 장난의 경계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는 원래 좀 대충대충 넘기는 성격이었다. 평소에도 작은 요괴들이 사람 놀래키려고 모습을 바꾸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백리도 장난치는 거라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잠깐 화라도 냈겠지만, 지금은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그런 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백리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하게 다쳐, 시무단이 기둥에서 그를 내려준 뒤에야 요력이 조금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상처로 빠져나간 정혈은 아직 메워지지 않았다. 그는 차라리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 처음 시무단이 그를 봤던 것처럼, 여우귀를 단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시무단은 그를 업고 빠르게 달렸다.
소년은 머리를 직접 묶은 터라, 모양새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 머리는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달릴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백리의 콧등을 스쳐 지나갔고, 그게 좀 간지러웠다. 아니, 간지러운 건 꼭 콧등만은 아니었다. 백리는 시무단의 목을 감은 팔을 살짝 조이며 조용히 물었다.
“내가 너를 속였는데, 너 화 안 나?”

시무단은 말했다.
“지금 바빠. 우리가 도망쳐서 우리 스승님 찾은 다음에 화낼게.”

잠시 멈추더니 또 위로하듯 말했다.
“우리 사부는 엄청 강해. 걱정 마. 괜찮을 거야 — 너는 어디 다쳤어? 아파? 네 엄마는 왜 그랬어?”

백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무단은 그가 기절했나 싶어 뒤를 돌아봤는데, 백리는 눈가가 살짝 붉어져 있었고, 작은 얼굴은 굳어 있었다.
백리는 말했다.
“그녀가 말했어, 바깥의 검은 기운은 모두 나를 향한 거라고, 다 나 때문이라고... 나만 죽으면, 창운곡은 평안해질 거라고, 그녀는 내가 불길한 존재라고 했어.”

백리는 뭔가 무서운 듯했다. 체념하듯 말을 쏟아냈고, 시무단이 자기를 버릴까 싶어 눈치를 살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날 버린다면, 나도 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는 거야. 이후에는 살든 죽든 깔끔하게 끝나는 거지.’

그런데 시무단은, 이 말썽꾸러기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기준으로 물었다.
“뭐? 다 너 때문이라고? 너 무슨 큰 사고 쳤냐?”

백리는 당황하며, 씁쓸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았으면 좋았겠지. 나 태어나던 날부터, 골짜기엔 온갖 소문이 돌았어. 나를 무서워하고, 나를 피해 다니고, 나를 재앙의 별이라고 부르던 사람들...”

시무단은 아직 나이가 어려 이런 일을 다 이해하진 못했다. 그저 한편으론 이상하게 느꼈고, 한편으론 백리가 불쌍해 보였다. 그는 어른 흉내를 내듯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하듯 말했다.
“에이,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그 큰 똥물 뒤집어쓴 채로 살아온 너도 참 힘들었겠다.”

백리는 하루 종일 마음이 요동쳤다. 방금 시무단에게 그 말을 내뱉었을 때는 거의 마에 걸린 듯 절망감에 빠졌고, 그것은 꼭 얼음처럼 차가운 물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말을 들었다. 시무단이 진지하게 건넨 그 말 한마디는 마치 작고 뾰족한 바늘처럼 그의 가슴에 맺힌 감정을 뚫어버렸다. 백리는 그동안의 모든 괴로움이 시무단의 가벼운 한마디로 우스꽝스럽고 역겨운 농담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 울다가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몸을 숙여 얼굴을 시무단의 목덜미에 붙였다. 한참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데, 나는……”

“하하, 그럼  나한테 시집와!” 시무단이 무심코 말했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저었다.
“아야, 아니지, 넌 여자도 아닌데, 나한테 시집올 수는 없잖아.”

백리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 시무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그건…… 괜찮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백리는 웃음을 흘리며, 소년 몸에서 나는 맑은 냄새를 맡고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
“내가 괜찮다 하면 괜찮은 거야.”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나를 너와 떼어놓으려고 하면, 나는 그 놈을 죽여버릴 거야. 이 세상 모두가 나에게 못되게 군다 해도, 다 죽여버리면 돼. 그게 뭐가 문제야?'

 

시무단은 백리의 마지막 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듣고, 그가 부상으로 기력이 다한 줄 알고 더는 따지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는 약간 허탈하게 생각했다.
‘에휴, 쟨 아직 어려서 말해봐야 몰라.’

백리가 길을 안내하고, 시무단은 그를 업은 채 화련동의 밀실로 내달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고 썩은 듯한 냄새마저 풍겼다. 시무단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리자, 혹시 길 잘못 든 거 아니야?”

“아니야, 바로 여기야. 여기에 지름길이 하나 있어서, 너희 현종이 산허리에 만든 관문으로 바로 갈 수 있어.”

밀실 안은 매우 어두워, 마치 머리 없는 파리처럼 부딪히며 달리던 두 사람은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까 화련동 안에서보다도 더욱 짙었다. 한참을 더 달렸지만, 별반 위의 푸른 빛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백리는 아무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아까 검은 기운에 둘러싸여 시무단조차 답답함을 느낄 때도, 그는 지열에서 솟은 검은 기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무단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너, 혹시 지쳤어?”

“응, 좀… 숨이 안 쉬어져.”
시무단은 찡그린 얼굴로 대답했고, 이마의 땀방울이 이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백리가 손을 뻗어 만져보니, 차갑고 끈적한 감촉이 느껴져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단, 날 내려놔!”

하지만 시무단은 그를 내려놓지 않았고, 자기 발이 휘청이더니 퍽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취평조도 날 수 없는 듯 축 처지듯 떨어졌다. 백리는 급히 그의 목에서 팔을 풀고, 번쩍 몸을 틀어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슴의 피는 이미 멎었고, 어쩐 일인지 오히려 힘이 조금 회복된 듯했다—평소보다도 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시무단은 한 손으로 자기 옷깃을 움켜쥐고 큰 숨을 쉬었다. 마치 누가 그의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아, 들이마신 공기는 목구멍에서 한 바퀴 돌고 다시 나가버리는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어지럽게 어른거렸다.

그는 손가락을 뻗어 살짝 비비자, 창백한 손끝에 작은 불꽃이 튀어 나왔다.
그제야 두 사람은 겨우 알아차렸다. 어둠 속에서 그들 바로 뒤에 밀착해 있던 검은 기운 하나가 해골머리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큰 입을 벌리며 그들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음기 어린 바람이 시무단 손의 불꽃을 손쉽게 꺼트렸다.

이 순간 시무단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그는 다른 쪽을 향해 보았고, 좁고 깊은 길 끝에 한 줄기 밝은 빛이 보이자, 백리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쪽에 확실히 출구가 있었다.

이 소년은 마치 힘들수록 더 큰 힘을 폭발시키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백리의 손을 잡고, 힘겹게 스스로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한 번 취평조의 등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흔들며 간단히 말했다.
“빨리 가자.”

백리는 왜 그가 그렇게 괴로운지 몰랐다.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검은 기운 일부는 이미 시무단 몸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것은 전혀 고통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슴의 상처 또한 그 검은 기운에 의해 부드럽게 메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시무단에게 이끌려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추격하던 검은 기운은 그들이 곧 빠져나간다는 것을 아는 듯, 순식간에 속도를 높였다. 곧 뒤쫓아 와 으깨질 듯 다가왔다.
동굴 입구의 빛은 점점 커지고, 점점 밝아졌지만, 시무단은 마치 발밑에 납덩이를 단 것처럼 무거웠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백리와 취평조를 움켜쥐고 있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발목을 잡아당겼고, 시무단은 앞으로 세차게 넘어지더니 눈앞이 까매졌고, 그 순간 모든 감각이 끊겼다. 하지만 그저 잠시 어지러웠을 뿐, 곧바로 정신이 돌아왔고, 누군가에게 안겨 몸이 가로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눈부신 빛이 시무단의 눈동자를 찔렀고, 그는 눈을 크게 뜨며 거의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어깨가 동굴 입구의 바위에 세게 부딪혀 뼈가 부서진 듯 아팠다. 그리고 눈을 뜬 채 백리가 그를 밖으로 던지는 순간을 봤고, 그 바로 뒤에 검은 기운이 백리를 감싸안았다.
그 검은 기운은 백리의 가슴을 꿰뚫었고, 마치 검처럼 그의 몸을 뚫고 나왔다. 백리는 온몸이 움찔하며 짧은 고통의 외침을 내뱉었다.

“리자!”

수많은 검은 기운이 백리의 몸을 꿰뚫었고, 마치 그를 산산조각내려는 듯했다. 그의 눈가에는 핏물이 두 줄기 흘렀고, 입술은 푸르스름하게 질려 있었다. 백리는 시무단을 바라보며, 그 처참한 소년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려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끝내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한 채, 검은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시무단 앞에서, 그 검은 기운과 함께 사라졌다.
바닥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마치 백리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고 나서 시무단은 땅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는 낮게 외치며, 이를 악물고, 거의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아픈 몸을 억지로 끌고 기어갔다. 그리고 예전에 취평조의 깃털을 뽑아 백리에게 만들어 준 ‘머리장식(豆蔻缠)’을 발견했다.

소년은 장식을 움켜쥐고, 손에 힘을 꽉 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사부를 찾으러 갈 거야.” 그가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반드시……”

그러고 나서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떨구며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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