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슬(priest)

금슬 13장

제13장 진안(阵眼)

시무단은 입으로는 허튼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눈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그는 화련동(火莲洞)에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비록 창운곡(苍云谷)에는 자주 드나들었지만, 여우왕의 동부(洞府)는 평소 아이가 이유 없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백리(白离)를 찾는다고 해도, 입구에서 이름을 몇 번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렇게 안으로 들어와서 화련동 안의 진열과 배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여우의 속성은 불. 시무단이 막 들어오자, 여우 동굴 안의 ‘경계’를 느낄 수 있었고, 그러나 그 불의 기운 속에는 다른 무언가도 있는 듯했다.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하나의 진법을 이루고 있었고, 바로 그 무언가가 동굴 밖에서 밀려드는 흑기를 막고 있었다. 시무단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걸 세세히 연구할 시간은 없었다.

싸운다고 해도, 시무단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삼사십 년 더 수련해도 이렇게 한 무더기 여우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자기 최대의 특기는 바로 ‘일을 망치는 재주’였고, 그래서 작정하고 훼방을 놓기로 했다. 이 화련동 안에서 몇 번 뒹굴면서 시간을 끌고, 이 진법의 진안을 알아낼 수 있다면, 진안을 망가뜨리는 게 최선. 설령 진안을 망치지 못하더라도, 리자가 그 틈에 도망갈 수만 있어도 됐다.

시무단은 마음 놓고 생각했다. 어차피 백마마는 자기를 어떻게 하지 못할 테고, 사부님도 있다. 기껏해야 오랏줄에 묶여 구록산(九鹿山)으로 끌려가 회초리 맞는 정도일 테니, 그 뒤에 다시 멀쩡히 살아나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시무단은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취병조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듯이 털을 부풀리며 삐약삐약 울다가 날아올랐다. 곧장 화련동 산벽에 있는 여우불을 향해 돌진했다. 그 여우불이 켜진 곳은 여우족의 선조들을 모시는 위패가 있는 자리였다. 그런 곳을 어떻게 저런 날짐승이 해칠 수 있단 말인가? 즉시 백자의 곁에 있던 몇 명의 시위가 그 새를 잡으러 달려들었다.

시무단은 어색하게 웃는 척하며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저희 사부님 새인데 제 말은 안 듣거든요—다들 바쁘시죠? 제가 이놈 잡아올게요~”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건 얼굴은 여우, 몸은 사람의 요괴 두 명이었다. 시무단이 안으로 한 걸음 내딛자, 두 요괴는 즉시 무기를 꺼내들었다. 시무단은 얼른 목을 움츠렸다. 번쩍이는 칼날이 그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키가 작은 것을 이용해 마치 생쥐처럼 두 요괴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고개를 숙여 파고들었다.

한편 제단 하나를 들이받아 넘어뜨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외쳤다.
“이 멍청한 새야, 어디로 도망가는 거야!”

백자의는 더는 참지 못하고 분노했다.
“저놈을 잡아!”

그러나 그 지긋지긋한 꼬맹이는 벼룩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튀며 탁자 뒤엎고 의자 걷어차며, 끝내 누구도 그를 잡지 못했다——이 모든 건 평소 도조가 뜰에서 그를 쫓아다니며 두들겨 팬 덕분이었다. 이때야말로 무수의 경공보다 더 유용했다.

“백마마, 화 푸세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이고 형님, 베지 마세요, 제 머리는 하나밖에 없단 말이에요…… 보세요, 그러니까 베지 말랬잖아요, 칼이 탁자에 박혀서 빠지질 않잖아요 뭘 하든 칼부림 치고 다들 할 일 없으면 우리 그냥 앉아서 얘기나 하죠……”
뛰어다니며도 입은 멈추지 않는다.
“백마마, 아니 장모님—한 번 화내면 주름이 세 개는 는다니까요, 진정하세요!”

백리의 안색은 창백했다. 그는 시무단을 보며 입꼬리를 약간 올렸지만, 고개를 돌려 백자의를 마주하자, 그 미소는 유리처럼 한순간에 부서졌다.

그의 눈은 매우 어두웠고, 평소보다 더 깊어졌으며, 빛 하나 없이 짙은 먹물 같은 증오가 가득했다. 도저히 해소되지 않을 것 같던 그 감정도, 시무단의 소란 덕분에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

백리는 한숨을 쉬고 눈을 내리깔았다. 한참 후, 낮게 물었다.
“어머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인간 세상에서는 부모 자식이 가장 가까운 혈육. 어느 부모가 자식이 조금이라도 고생하는 걸 원하겠는가? 그런데 왜, 어릴 적부터 줄곧 나를 경계하셨어요? 두려워하셨어요? 지금은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시잖아요?

증오는 조금 옅어졌지만, 억울함은 돌덩이처럼 가슴을 막았다.

그는 자신 온몸의 정기가 상처에서 줄줄 흘러나와 그 검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백리는 생각했다. 자신은 이제 곧 죽겠구나. 하지만 막상 죽을 순간이 와도, 왜 죽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전설에 따르면, 사람이 죽기 전에는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백리는 눈앞이 흐려졌고,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려 했다. 그런데 보니, 구록산에서 몰래 나와 자신 이름을 불러주던 그 소년의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인생 전체에서 행복이라 부를 만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혹여 시무단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백리”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테고, 자신이란 존재를 기억해주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자신은 행복이란 게 뭔지도 몰랐을 것이고,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나 길고 지루한 여정이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행복하지 않다면, 죽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억울할 뿐이다.

여러 마리 크고 작은 여우 요괴들이 이미 시무단을 모서리로 몰아넣었다. 백리는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를 보내주세요.그가 무슨 난리를 칠 수 있겠어요. 그를 다치게 하면 구록산 쪽에도 설명하기 곤란하잖아요.”

 

백자의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백리는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고, 더 이상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슬퍼 보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 고양이나 강아지를 길렀어도 감정이 생길 법한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은 눈가와 미간에만 얕게 흐를 뿐, 마음속의 공포와… 증오를 뚫고 나오진 못했다.

 

“그를 보내줘요.” 백리는 다시 한번 말하며 살며시 눈을 감았고, 입꼬리엔 냉소 같은 웃음이 어렸다. 그의 요력은 무언가에 눌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목소리는 점점 힘이 빠졌다. 비록 백자의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머니였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만약 내가 지금 움직일 수만 있다면,’ 백리는 속으로 차분하고 냉담하게 생각했다.
‘너희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야. 모든 뼈를 부러뜨린 뒤, 시체를 동굴 입구 햇빛 아래에 말려서 바짝 마른 송장으로 만들고, 독수리가 살점을 다 쪼아먹은 후엔 뼈를 모아 벽에 박아버릴 거야. 내가 눈만 떠도 그 뼛조각들이 보이게.’

시무단은 땅바닥에서 형편없이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지만, 수십 마리 여우 요괴들이 에워싸 쫓고 막는 걸 이겨낼 수는 없었다. 그는 멀리서 백리가 이미 눈을 감고 있는 걸 흘끗 보고는 더욱 초조해졌다. 백리가 요괴이고, 사람보다 강하며, 보통의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기둥에 못 박혀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바로 그때, 그의 발밑에서 누군가 떨어뜨린 나무판 하나가 밟혔고, 그는 무언가 떠올랐다.

한 마리 여우 요괴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시무단은 몸을 숙여 그 나무판을 집어 들고 옆으로 재빨리 피했다. 그리고 입을 열어 길고 발음도 어려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주문은 예전에 강화가 그를 데리고 검을 타고 날아다닐 때 딱 한 번 들은 것이었다. 글자 하나 배운 적 없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그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픈 발음과 손짓을 기억해냈다.

주문을 막 외우자, 시무단은 품속의 나무판이 살짝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몸속 단전에서 기운이 위로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작은 소용돌이처럼 형성되어 나무판을 위로 떠올렸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나무는 오래도록 여우굴 안에 있었기에 나름 영성을 지니긴 했지만, 강화의 검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도력은 강화 산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돌아가며 번뜩였고, 번갯불처럼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그는 나무판을 내던지고 몸을 낮춰 달려드는 여우 요괴의 검을 피해 굴렀다. 그 검을 들고 있는 자는 동굴 내 장로급일 것이며, 당연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무단은 옆으로 굴러가며 재빠르게 그의 바지를 움켜잡아 반쯤 찢어버렸고, 여우 털이 다 빠지지 않은 허벅지가 드러났다.

누구든 대중 앞에서 갑자기 바지를 벗겨지면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다. 시무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가락을 튕기며 외쳤다.
“가라!”

“피팍” 하는 폭음과 함께, 허공에서 번개가 번쩍였고, 그 장로급 여우 요괴의 손목을 정확히 쳤다. 손에 쥔 장검은 그 충격에 떨어졌고, 시무단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반대로 휘둘렀고, 그 일격은 바람을 몰고 오는 듯 강력해서 다가온 작은 요괴들을 모두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쫓지 않고, 다시 검을 거꾸로 돌려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수인(손짓)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입에선 엉뚱한 소리처럼 들리는 어검주를 외치며, 손가락 대신 검으로 어검 수인을 완성했다.

다음 순간, 시무단은 강한 힘이 자신을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것을 느꼈고, 주변의 작은 요괴들은 그가 검을 품에 안고 바람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그는 제대로 날지도 못해 몇 번이나 바위에 부딪혔다. 어린 나이에 그런 충격에도 소리 한 마디 내지 않고, 소매를 휘날리자, 그 바람이 동굴 벽에 붙어 있던 여우불을 전부 꺼버렸다. 백자의는 놀라며 외쳤다.
“이 죽일 놈!”
그러고는 소매에서 채찍을 꺼내 시무단에게 던졌다.

그 채찍은 살아 있는 것처럼 뻗어나가 시무단의 목을 감으려 했다. 시무단은 긴급히 검을 안고 공중에서 몸을 굴려 피했고, 등으로 벽에 세게 부딪혔다. 눈이 핑 돌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오장이 다 뒤틀린 듯한 고통에 장검이 흔들렸다. 힘이 빠져, 그는 떨어질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 시무단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불이 꺼진 산굴 안, 어둠 속에 감춰졌던 진형이 보였다. 백리가 묶인 제단 기둥과, 그 주위에 희미하게 박혀 있는 야명주들이 서로 호응해, 마치 회피 음기(避阴) 진형처럼 되어 있었다. 순간 시무단의 머릿속에 예전에 강화에게서 본 진법서 내용이 떠올랐다. 계산식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중심을 알아냈다. 그것은 백리가 묶인 기둥에 꽂힌 하얀 깃발들 중 아래에서 두 번째 것이었다.

시무단은 이를 악물고 힘을 짜냈다.
“내가 그러니까 장모님한테 맞을 팔자인가 봐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백자의의 두 번째 채찍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시무단은 혀끝을 깨물어 피를 뱉으며 마지막 기운을 끌어올렸고, 장검을 두 자 가량 높이 들어올려 깃발을 향해 돌진했다. 정말로 그 기둥의 하얀 깃발을 향하자, 백자의의 채찍이 멈칫했고, 곧이어 더욱 매섭게 따라왔다. 불이 꺼진 동굴엔 야명주 몇 개만이 빛나고 있었고, 시무단은 그 채찍 끝에 검은 요화(妖火)가 피어오르는 걸 똑똑히 보았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시무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돌진했다. 채찍이 그의 등 뒤를 스쳤고, 닿기만 했는데도 타는 듯이 아팠다.

그때 취평조가 날아왔다. 시무단은 공중에서 그 새를 진형의 중심을 향해 밀쳤다. 취평조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머리부터 하얀 깃발로 돌진했고, 뾰족한 부리가 깃발을 찔렀다. 본능적으로 몸부림친 취평조는 천성적으로 길조인 영물이라 회피 음기 진형과 상극이었다. 결국 깃발을 기둥에서 떨어뜨렸다.

시무단은 그 타이밍에 맞춰 떨어지는 취평조를 받아 안았다. 깃발이 기둥에서 떨어지자, 동굴 입구에서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고, 곡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여우 요괴들은 즉시 움츠러들었다.

시무단은 깜짝 놀라 둘러보았고, 자신만이 성반의 푸른 빛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다른 요괴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백자의의 채찍은 허공에서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시무단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던져 백리 앞에 떨어졌고, 잠시 망설인 뒤 백리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손가락이 닿기도 전에 백리는 눈을 떴고, 시무단은 말했다.
“좀 참아.”

그러고는 그를 기둥에 못 박은 검을 뽑아냈다. 백리는 몸을 움찔하며 심하게 경련했고, 시무단은 곧바로 한 손으로 그의 상처를 눌렀다. 그러고는 재빨리 그를 묶은 밧줄 몇 개를 잘라냈다.

백리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그 위에 쓰러졌다. 지금 그의 모습은 이미 소년이었고, 성인보단 가녀렸지만, 그래도 이 갑작스런 무게는 어린 시무단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결국 둘은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금슬(prie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슬 15장  (0) 2025.07.19
금슬 14장  (0) 2025.07.19
금슬 12장  (0) 2025.07.19
금슬 11장  (0) 2025.07.19
금슬 10장  (0) 2025.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