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이런 내력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자세히 말하기가 어려웠다. 셰바이가 반대하지 않자 은무서는 중점을 골라서 몇마디로 루함월에게 대충 말했다. 결국 그녀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복산을 하려 해도 손을 댈 수가 없었기에 계산결과가 정확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간단명료하게 말했지만, 루함월은 뇌동대소를 이 몇 마디 말로 대충 한 편의 거대한 고뇌극을 메우고, 마지막에 얼굴을 찡그리고 살이 아픈 모습으로 흰 천을 감싼 손등을 찌르며 물었다.
"너 눈 뜨기 전에 서너 살 때 의식이 있었어?"
셰바이가 안색을 바꾸지 않고 눈을 들어 말투가 평범하게 말했다. "있어요."
매일 밤 매 순간마다 끊이지 않는 고문을 그는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그때 그는 마치 끝없는 꿈에 빠진 듯 아팠고 괴로워했지만 소리치지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벌지도 못했다.그의 기억의 시작점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모두 어둠 속의 것들이었고, 당한 것은 모두 악귀가 받아야 할 형벌이었다.
그래서 그가 진정으로 눈을 뜨고 살아났을 때, 그는 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대해 적의를 품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이 그의 살아있는 것에 접근하는 것에 저촉되지만, 저촉하는 방식은 비할 바 없이 단일하다.눈을 뜨기 전의 모든 기억이 그에게 울부짖어도 소용없고, 발버둥쳐도 소용없고,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하고, 모든 감각을 차단해야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온종일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은무서만큼 큰 살아있는 사람을 완전히 공기로 여겼다.
다행히 은무서는 그의 반항과 경시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인내심이 이상하게 좋았다.
셰바이가 은무서에게 처음으로 살짝 손을 내려놓은 것은 눈 뜬 지 9일째였다.
그날은 꽃샘추위가 엄습하였는데, 하필 또 가랑비가 내리고 눈이 끼어 몹시 음산했고, 밤이 되자 더욱이 뼈마디 하나하나가 추워서 아팠다.그때 셰바이는 몸이 허약한 데다가, 또 하루 종일 먹지도 잠도 자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 몸에 전혀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몹시 춥다. 그러나 이 추위감은 칼산과 불바다를 이겨낸 그에게 있어서 가장 쉽게 참을수 있는 느낌이였다. 그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들부들 떠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뼈를 뻣뻣이 들고 말없이 버텼는데 온몸에서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수 없었다.
당시 방에 막 들어온 은무서는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추워?"
그는 묻는 말이지만 말끝은 올라가지 않고 아주 확고한 모습을 하였다.사실셰바이는 지금까지도 단지 얼굴을 보기만 해도 은무서가 춥은지 어떤지를 알수 있다는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며칠 전 은무서는 그의 저촉심과 방비심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그와 거리를 두어 그를 자극하지 않도록 주의했다.그러나 그날 은무서는 개의치 않고 셰바이의 손을 잡았다.
그때 셰바이의 손은 말랐고 작았으며 다섯 손가락은 모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가늘었다. 은무서는 한 손으로 그의 두 손을 모두 손바닥에 넣을 수 있었다. 그의 천성적인 극양의 관계인지 그의 손은 매우 따뜻했고 셰바이는 한동안 반응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러나 금방 정신을 차린 그는 조건반사적으로 옆으로 피하려고 손을 빼서 은무서와 멀어지려고 은무서의 손목을 차고 때리고 심지어 세게 물었다.
그는 매우 힘껏 물었지만 아이의 힘은 어디까지나 크지 않았고 심지어 피도 보지 못했다.은무서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왼손으로 그의 두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뒤무릎을 휘감아 가볍게 안아버렸다.
셰바이는 손을 물어뜯는 자세를 유지하며 오래된 나무 안락의자에 안겨 앉았다.
그는 셰바이를 무릎에 껴안고 어디서 건져왔는지 모르는 두루마기와 여우가죽으로 감싸면서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됐어, 됐어, 입을 느슨하게 하면 꽃을 씹을 수 있겠어? 대충 성의를 표하면 그만이지,성의는 모자르지 않아. 자,발을 움츠리고 단단히 싸줄게."
은무서의 품속은 그의 손바닥과 마찬가지로 따뜻했는데 피부 뼈를 뚫고 조금씩 몸속으로 스며들수 있는 따뜻함이였다.
셰바이는 머리와 두 손만 드러나도록 감쌌고 힘은 많이 가누지 못하였다. 또 사람은 늘 따뜻하고 추위를 두려워하는 천성이기때문에 점차 얌전해졌다.그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은무서를 쳐다보았으나 그가 화낼 뜻이 없음을 보고 말없이 은무서를 잡았던 손을 놓고 이를 놓았다.
"그래야지."은무서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그의 손도 여우 가죽으로 감쌌다.
일찍이 안고 돌아왔을 때, 은무서는 그의 몸을 닦아주었고, 매일 먼지 제거 주문까지 하여 온몸에 별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다.그의 검은 머리는 숯처럼 귀밑머리에 얌전하게 착 달라붙어 있다.얼굴은 비쩍 마르고 턱이 뾰족하여 은무서의 손등에 얹었을 때 배기기도 하였다.새까만 눈은 앙상한 관계로 유난히 커 보였지만 늘 물안개처럼 덮여 있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의 목 밑에 작은 매미 번데기 덩어리가 둘러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차마 싫어도 가만히 앉아 있는 그를 보며 은무서는 웃겼다.
그가 긴 소매를 쓸자 바닥에 난로가 하나 더 많아졌고 난로 안의 불빛이 세차게 타오르며 무엇을 넣었는지 가벼운 삐걱거리는 소리와 옅은 꽃나무 향기가 났다.은무서는 불 위에 나무 받침대를 세우고 술 한 주전자를 데웠다.
그는 일관하게 궁리를 하면서 꽃나무 향기와 창밖의 진눈깨비에 의지하여 따뜻한 술을 마시면서 겨우 다섯살이 된 셰바이를을 속이려 하였다.
셰바이가 은무서의 품에 앉자 뼈에 박힌 한기가 하나하나 흩어져 은무서의 품에 담긴 따뜻한 기운으로 대체되었다.그는 입술을 오므리고 묵묵히 은무서의 술잔을 비키고나서 호기심에 가득찬 경계심으로 불빛을 한참 쳐다보면서 아무리 해도 불이 자신의 몸을 태우지 못할것이라고 확신하고서야 조심스레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어린아이의 애증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그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누구와 친해지고,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를 싫어한다.그때의 셰바이는 아무리 특별해도 결국은 아이였다.그것은 그가 기억을 가진 이래 처음으로 몸의 고통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고통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그는 이 낯선 세상에 대해 여전히 적의와 항거로 가득 차 있지만, 그날 밤부터 유일한 예외는 은무서였다……
루함월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어렸을 때 왜 은무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상대하지 않았는지 갑자기 이해가 돼.이 일은 나한테 맡겨 내가 눈을 뜬 후에는 상대방은커녕, 만나는 사람마다 죽이고 싶겠지"
은무서: "..."
셰바이: "..."
"그래서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애초에 너에게 백귀양시진을 심어 준 사람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루함월이 물었다.
"가능성이 있어요." 셰바이가 말했다.
틀림없다. 세상에 셰바이의 내력을 알고 이 점을 함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뿐이다.
그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한 루함월은 두손을 내밀어 그 동전 여섯닢을 자기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래, 그 미친 변태는 틀림없이 원망할 거야. 루 이모가 찾아줄게!"
셰바이는 그녀 밑에 있는 동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아요."
루함월은 손을 떨면서"너도 변태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억지로 참았다.
은무서조차도 의아하고 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는데, 마치 그의 머리가 어디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릴 땐 미웠는데, 커가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제가 죽는걸 무서워 한다는 걸 발견했으니까요."
셰바이는 냉담하게 한마디 설명한후 능숙하게 루함월이 가지고있는 동전을 받아들고 비여있는 손으로 동서북쪽을 한바퀴 돌아보더니 동전을 탁자위에 흩어놓았다.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살고 싶다는 뜻이다.만약 애초에 그 요진이 없었다면, 그는 살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그를 찾는데 방해가 되지 않아요."셰바이는 몇 번 굴러간 후 조용히 책상 위에 쓰러진 동전을 쳐다보며 서늘하게 말했다.
"그가 지금 뒤에서 저를 살지 못하게 손찌검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저는 그를 먼저 죽일 수밖에요."
루함월: "..."
이 세상에는 요령이 매우 많고 성품과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바람을 불고 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나쁜 짓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수명이 좀 긴 것 외에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적어도 셰바이의 두 배는 되는 대요괴로서 루함월은 마지막에 속한다. 싸움은 할 줄 모르고, 살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장수 이외에 단지 두 가지 기능만 있었다. 하나는 선천적으로 점술을 할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온갖 잡동사니 책들을 볼 수 있었고, 게다가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각종 진법 주술을 통달하였다.물론…단지 문면적으로 잘 아는 것에 그치다.
그녀가 고양가에서 백 여년을 편히 살수 있은것도 낙사장과 은무서 두 사람이 이곳에서 살고있었기때문이다.이렇게 오래 살면서도 은무서에게 감히 도전하는 생물을 몇도 보지 못하였다. 필경 어느 누구도 자신이 비참하게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그 백 년 전에 셰바이에게 진을 쳐서 그를 살리고 백 년 후에 또 발을 써서 그를 불안하게 한 주인은 사실 셰바이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에 보면 은무서도 포함한다.
루함월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참지 못하고 "앗! 누가 이렇게 겁이 많아!" 라고 중얼거렸다.한쪽 손가락이 재빠르게 탁자 위의 동전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셰바이: "..." 그는 루함월의 열 손가락에 눈이 휘청거려서 아예 보지 않고 두 눈을 살짝 감았다.
결국 잠시 멈추지 않고 루함월이 입을 열어 말했다. "동북."
셰바이는 눈을 뜨자마자 책상 위의 동전이 루함월에 의해 점괘가 나온 것을 보았다. 그녀는 동전을 가리키며 셰바이에게 말했다.
"이로부터 정동북방향으로 삼천 오백리를 가면 산과 물이 만나는 곳이 음위이다."